김병수/논설위원실장
아침햇발
국민은 주로 언론을 통해 정부가 하는 일을 안다. 얼마나 알까? 신문기자였다가 지난 정권 때 국회의원을 거쳐 청와대에 입성한 인사가 사석에서 한 말이다. “국회의원이 돼서 보니, 정부가 하고 있는 일 중 기자들이 아는 건 10~20%가 될까 말까 하더라. 그런데 청와대에서 보니, 국회의원들이 아는 것도 10~20%밖에 되지 않더라.” 두루뭉술하지만 그의 말대로라면 기자들이 알고 있는 건 기껏해야 20%의 20%니 4%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다른 사람한테 이 얘기를 했다.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은 그 한 자락을 파고 들어 때로는 큰 줄기를 캐낸다. 이제는 그조차 힘들 듯하다.
정부가 이른바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이란 언론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참여와 진보를 자처하는 이 정부가 언론정책을 추진하는 방식이 권위적 보수권력 행태와 다를 게 없다. 실제 의도와 반대되는 선전용 언어로 호도하는 것이나, ‘권력이 하겠다는데 어쩔거냐’는 식이 그러하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 있는 한 대목으로 잠시 가보자. 조지 부시가 백악관에 입성한 바로 다음날부터 백악관에서는 세금구제(tax relief)라는 용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 말은 4년 뒤 선거 유세에서 더욱 자주 등장한다. 구제가 있는 곳에는 고통이 있고 그 고통을 없애주는 구제자(영웅)가 있다. 어떤 사람들이 그 영웅을 방해하면 그는 구제를 방해하는 악당이 된다. 세금구제는 감세정책을 포장한 것이다. 감세정책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세금에 구제란 말이 붙음으로써 세금은 고통이 되고, 감세에 반대하면 나쁜 사람이 돼 버린다.
취재 지원이고, 선진화 방안이란다. 취재를 지원하니 투명한 정부고, 선진화이니 반대하면 후진적 행태가 된다. 그런데 기자실을 없애 취재처와 기자들을 공간적으로 떼어 놓고, 방호요원까지 고용해 공무원과 기자의 대면 접촉을 막는 게 내용의 뼈대를 이룬다. 취재 내용은 일일이 보고하게 한다. 선진화라는 것도 정부가 그렇다고 우길 뿐이다. 레이코프가 말하는 보수권력의 전형적 행태다. 대통령의 한마디에 충성경쟁을 하듯 취재통제 방침을 내놓는 모습도 권위주의 정부 시절과 닮았다.
그런데도 많은 누리꾼들은 기자들이 기득권 유지를 위해 반대하는 것처럼 여긴다. 레이코프의 말이 까닭의 일면을 읽게 한다. 그는 경쟁자의 ‘프레임’을 공격하는 것은 그들의 메시지를 더욱 강화해 줄 뿐이라고 했다. 정부는 먼저 노무현 대통령이 나서 기자실을 특권의 상징처럼 여기게 만들었다. 효과는 컸다. 기자실 존폐문제를 언급할수록 언론정책 반대 목소리는 기자들의 이기적 집단행동으로 단순화된다.
정부는 브리핑룸에서 충실히 정부정책을 설명하겠다고 한다. (미리 허락된 범위 안에서, 그리고 취재 내용을 모두 보고토록 통제하지만) 전화취재나 전자브리핑 제도를 통해 기자들의 질문에도 ‘성실히’ 응하겠다고 한다. 믿을 수 있을까. 아마 공무원들이 형식적으로 답하거나, 있는 일도 없다고 거짓말하기 일쑤일 게다. 경제부총리를 지낸 이와 정부 언론정책을 두고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정부가 언론에 감추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믿음부터 주어야 하는데 선후가 바뀌었지 않았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간명했다. “공무원들이 언론한테 거짓말은 많이 하지. 나도 그랬고.” 얼굴 보며 취재해도 그러는 터에, 얼굴 없는 취재가 오죽할지.
핵심은 국민의 알권리와 정부에 대한 언론의 견제 기능을 신장하느냐, 위축시키느냐에 있다. 위축시킨다면 반민주적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병수/논설위원실장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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