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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세상에 이런 일도 / 권복기

등록 2007-08-21 17:42

권복기/공동체팀장
권복기/공동체팀장
한겨레프리즘
회사를 그만두고 시골에 내려가 농사꾼으로 살고 있는 한 선배와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다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다.

“에이~ 형, 그럴리가 있나. 형이 뭘 잘못 알았겠지!” “야, 진짜야. 내가 겪은 일이라니까?” 선배는 펄펄 뛰었다.

그의 이야기는 이렇다. 시골로 내려간 뒤 부인과 논의해 아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다. 딸 하나를 둔 그 선배는 그 아이를 키우면서 다른 아이들한테도 눈길이 갔다고 했다. 특히 그는 하늘로부터 귀한 생명을 받아 태어난 천사 같은 아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버림받는 현실을 늘 안타까워했다.

입양기관에 가서 뜻을 밝히고 세살배기 남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여느 입양 부모처럼 선배는 그 아이를 친자로 입적하고 싶었다. 그런데 면사무소에서 친자 입적을 하려하자 이게 웬일? 벌금을 내란다. 친자일 경우 한 달 안에 신고를 하는 게 의무이기 때문이라나. 입양사실 확인서를 내밀어도 담당 공무원은 도리질을 칠 뿐이었다.

“벌금은 많아야 5만원도 안 돼. 정부가 입양가정을 지원하지는 못할망정 벌금을 내라는 게 너무 어이가 없어. 우리나라가 출생률이 낮다고 난리치는 나라 맞아?”

선배가 입양으로 얻은 불이익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의료보험이 문제가 됐다. 입양한 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지 않은 밀린 보험료를 내야 했다. “우리나라가 그렇지 뭐!” 선배의 분노는 이제 탄식으로 바뀌었다.

어느 귀농인이 겪은 이야기도 놀라웠다. 그는 환경과 생명을 살리는 농사꾼이 되겠다고 시골로 간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살면서 가능하면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일회용품은 거의 쓰지 않았고,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사지 않으려 애썼다. 살림집을 지을 때도 흙과 나무만을 썼다. 자신이 죽으면 육신이 흙이 되어 흩어지듯 자신이 쓰던 모든 것도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가 공을 들인 문제는 생활하수 처리. 주방이나 목욕탕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를 처리하고자 집 앞에 작은 연못을 만들고, 부레옥잠 등 수질을 정화하는 수생식물을 심었다. 화장실은 똥을 거름으로 쓴 조상들을 본받아 ‘푸세식’으로 만들었다. 거기서 나온 인분을 거름으로 만들어 밭에 뿌릴 생각이었다.


집을 다 지은 뒤 그는 군청에 건축신고를 하러 갔다가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건축신고를 받아주지 못하겠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푸세식’ 화장실이 문제가 됐다. 공무원은 생활하수 처리를 위해 정화조를 묻어야 신고를 받아줄 수 있다고 했다.

들어보니 담당 공무원의 말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그 공무원은 정화조를 통한 생활하수 처리는 환경오염을 막으려는 제도이며, 혹시 ‘푸세식’ 화장실의 분뇨가 냇물로 흘러들기라도 하면 누가 책임을 지겠냐고 따지듯 물었다고 한다.

그도 반론을 폈다. 당신 말이 맞다, 하지만 ‘푸세식’ 화장실은 정화조보다 더 환경친화적이다. 법의 취지가 환경오염을 줄이자는 것이라면 이를 막는 것은 법을 너무 협소하게 해석하는 게 아니냐고. 그는 가장 친화적인 화장실을 갖춘 자신의 집이 환경관련 제도 때문에 신고를 거부당하는 현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집은 법적 지위를 얻기 위해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무엇이 이런 황당한 결과를 낳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법? 공무원? 아니면 ‘별난’ 두 사람?

권복기/공동체팀장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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