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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효순 칼럼] 기구한 정상회담

등록 2007-08-21 17:56

김효순 대기자
김효순 대기자
“북한 같은 나라와는 수뇌 사이에 직접 대화하지 않으면 일이 진척되지 않는다. 북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보다도 미국이다.”

국내 인사가 이런 말을 하면 얼마 전만 해도 ‘친북좌파’라는 딱지를 붙이며 해코지를 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앞에 인용한 부분의 화자는 지난해 9월 일본 총리직에서 물러난 보수정객 고이즈미 준이치로다. 그는 5년5개월이라는 장기 재임기간에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몇 차례 강행해 한국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았으나, 미국과의 사전 조율 없이 평양을 방문해 꽉 막힌 북-일 관계의 숨통을 트려했던 점은 평가할 대목이 있다. 부시 행정부의 견제와 일본인 납치문제의 역풍으로 북-일 관계 정상화 꿈을 접은 그는, 작년 6월 말 퇴임을 앞두고 부시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멤피스 생가를 함께 찾는 등 돈독한 우의를 과시했다. 북한과 직접대화를 하라는 고이즈미의 마지막 설득에 대한 부시의 답은 “직접 대화에 응하면 북한의 술수에 말려들 뿐”이었다고 한다.

2001년 9·11 사건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하늘을 찌를 것 같던 부시의 권세도 임기 말이 되면서 눈에 띄게 약해지고 있다. 언론에 불리한 정보를 흘리지 않고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으로 똘똘 뭉치던 부시 진영의 전열도 너덜너덜해졌다. 최근에는 불똥이 부시 대통령의 연설문 작성에 관여했던 팀에 번졌다. 부시 행정부의 통치를 상징하는 몇몇 표현을 놓고 전직 참모진들 사이에 공을 가로챘느니 하는 진흙탕 싸움이 벌어진 것이다.

다툼 대상이 된 표현의 하나가 2002년 초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에서 등장한 ‘악의 축’이다. 주장이 엇갈리는 대목이 있기는 하나, 연설문 초안을 작성한 데이비드 프럼은 이라크 공격을 정당화하는 최선의 이유를 부각시키라는 지시를 받고 19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기습 직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의회에 선전포고를 요구했던 연설을 참조했다고 한다. 이라크를 중심으로 하는 테러 지원국의 모임을 2차대전 당시의 독일·이탈리아·일본의 3국 동맹 추축에 견주어 처음에는 ‘증오의 축’이라고 썼다. 하지만 부시 주변의 보수적 복음주의 분위기가 작용해 증오가 악으로 바뀌었다. 애초에는 이라크가 표적이었으나,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안보보좌관의 의견으로 이란이 추가됐고, 최종단계에서 북한이 들어갔다고 한다.

악의 축이란 표현의 지적 소유권을 놓고 부시의 옛 참모들이 드잡이를 하는 데는 관여할 바 아니나, 그 말의 함의가 한반도 정세에 가져온 악영향은 쉽게 잊을 수가 없다. 단순한 적대관계가 선과 악의 도덕적 대치구조로 바뀌면 차원이 달라진다. 악의 세력을 섬멸해야 하는 ‘십자군’적 발상에 서면 타협의 여지가 사라지게 된다. 남북대화 기조가 뒤틀리고 북한이 작년에 핵실험 강행이라는 극단적 카드까지 사용한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부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힘자랑을 하다가 제풀에 지쳤는지 지난해 하노이 아펙 정상회담 무렵부터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하기에 이르렀다. 국내외적으로 여러 주제를 놓고 잃어버린 세월 논쟁이 유행하고 있지만, 정말로 아쉬운 것은 이 분야다. 대북 강경론과 퍼주기 논란 속에 금쪽 같은 시간을 흘려버린 끝에 6·15 선언 이후 7년여 만에 후속 정상회담이 잡히는가 했더니 다시 연기됐다. 어렵게 성사된 회담이 자연재해 때문에 미뤄질 수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미뤄진 날이 35일이라고 하지만, 나라 안팎의 정세변화를 보면 너무 길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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