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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언어예절] 선과 청혼 / 최인호

등록 2007-08-23 17:42수정 2007-08-23 17:44

언어예절
청혼·혼인은 선택·모험이자 새삶을 여는 일이다. 책임이 따르면서 집안과 사회가 이를 우둔다. 조혼에다 번잡한 ‘육례’(六禮)를 찾던 시절엔 집안끼리 중신아비를 넣고서도 문서로 ‘허혼’한 일을 서로 감사하며 ‘사성’(四星)과 인사장이 오갔다. 허례허식 또는 겉치레가 아름다울 수 있는 법은, 옷과 같아서 통째로 벗어 던지면 남는 게 알몸과 다를바 없는 까닭이다.

전날 ‘선’은 사랑마당이나 울밖 먼발치에서 겉모습만 훔쳐 보는 정도였다. 임자와 어버이들이 얼굴을 맞대어 무게를 달고 허세를 부리기도 하는 게 요즘 맞선에 면접이다. 선이란 늘 보고 보이는 일이어서 설렘과 부끄러움이 함께하는데, ‘첫선’이란 말은 많은 것을 상품화한다.

그 이름이 갖가지인 만큼 중신어미(중매쟁이·중신아비·매파·여쾌·매온·뚜쟁이 …) 일은 예와 지금이 따로 없다. 디노블·앙세·듀오·커플라인 …들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선남선녀를 끌어대 성업을 이룬다니. 휴대전화·인터넷 소통이 별난데도 인연은 제대로 닿지 않는다는 얘기다.

남자가 청혼하는 말인즉 ‘같이 살자’인데, 썩 사사로운 일이어서 굳이 실체까지 들출 것은 없겠다. 하지만 사성(별넷)을 보내어 청혼하던 내림을 따른다면 그럴싸한 말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 별님이 되어주오. 시키기만 하면 해도 달도 따다 드리리다!” 약간의 허풍은 양념이다.

인지가 높어져선지 사주(해·달·날·때)는 타고난다고 여기는 사람도 드물어졌고, 그 흔하던 ‘팔자 타령’도 듣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행복’과 가까워 보이지는 않는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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