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요즘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여성 출연자의 신체 노출과 성적 표현이 과거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공중파 방송에서도 초비키니 또는 속옷 차림과 성 행위를 모사한 춤 등이 자주 등장한다. 케이블 방송의 경우, 종교·교육 등 몇몇 분야를 제외한 대부분 채널이 성 관련 내용을 노골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일부 경제·스포츠 채널까지 그렇다.
이런 추세를 단순히 방송 상업주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사회 현실의 변화가 방송에 반영되는 성격이 강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그렇다. 과거 성인 클럽에서나 하던 야한 춤과 놀이가 젊은이들 모임에 자리잡고, 이를 당당하게 즐기는 여성도 적지 않다. ’섹시’는 이미 폭넓은 연령층에서 보편적 가치가 됐다. ‘외설 문화’(raunch culture)의 눈부신 확산이라 할 만하다.
미국의 여성작가 애리얼 레비는 <여성우월주의자: 여성과 외설 문화>에서 이런 현상을 비판했다가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이런 문화는 결국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고착시키며, 여성운동의 승리가 아니라 쇠퇴를 보여준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반면, 옹호론자들은 여성들이 욕망과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새로운 힘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여성운동의 연장선에 이런 문화가 자리한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어느쪽 말이 맞는지는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의식 발전이 따르지 않는 외설 문화가 부작용을 낳을 것임은 분명하다. 근대 이후 역사를 보면, 성적 표현의 자유는 인간성 존중 및 자아실현 욕구의 발전과 궤를 같이했다. 그런데 지금의 외설 문화는 다분히 욕망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점에서 속물적이다. 단순한 욕망 표출만으로는 삶을 고양시킬 수 없는 것은 물론 이내 정신적·사회적 장벽에 부닥치기 마련이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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