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지난 7월 국민연금의 급여를 2028년까지 20%포인트를 깎아내려 ‘용돈연금’으로 전락시킨 정부와 정치권의 야합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것이 참여정부 연금 왜곡의 1탄이었다면, 어느 사이 2탄이 준비되고 있다 한다. 바야흐로 국민연금기금의 투자와 관리를 책임질 기구를 둘러싸고 정부 안에 매우 불온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 불온함은 크게 두 가지에서 연유한다. 첫째는 국민연금기금을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 등 경제부처의 실질적 관할권 아래 두고자 하는 위험한 발상이 진행되고 있는 점이다. 경제부처는 불과 10년 전까지도 ‘싼 이자율로’ ‘필요한 만큼’ ‘마음대로’ 국민연금기금을 차용함으로써, 한편으론 국민연금기금에 십수조원의 손실을 끼치고, 다른 한편으론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극도의 국민불신을 스스로 조장했었다는 사실을 벌써 잊은 모양이다. 아니면 그 시절의 향수를 아련히 그리워하던지 ….
물론 표면적인 이유야 얼마든지 내세울 만하다. 현재 기금 규모가 200조원을 넘어섰고 장차 국내총생산의 60%까지도 육박할 수 있어 거시경제정책과 조응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에 엄청난 파국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그것이 경제부처 산하에 국민연금기금을 맡겨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엄중하게 기금의 중립적 운용을 철저히 보장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기금 운용과 정부 경제정책과의 조응관계를 단절해서도 안되지만, 어떤 한 시점에서 판단하는 정부 정책의 논리에 기금 운용이 휘둘리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더군다나 임기 동안 정권 보신을 꾀하는 정치권으로부터 연금기금을 활용하고픈 유혹, 이른바 기금의 ‘정치적 휘둘림’이라는 더 큰 재앙을 막기 위해서도 기금 운용의 독립성은 절대조건이다. 정부 부처로부터 철저히 자유로운 위상이 보장되는 독립기구 성격을 보장받되, 경제부처의 정책적 판단은 충분히 공유할 수 있는 내부 조직체계를 설계함으로써 경제부처의 우려는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다. 그리고 연금제도와 기금의 연동적 관계를 풀어낼 정부 안의 주무부처는 여전히 보건복지부에서 행하는 것이 문제될 것이 없다.
두번째의 불온함은 기금의 운영을 책임질 상설위원회에서 국민의 참여 폭을 크게 축소하려는 흐름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인 1999년 국민연금법을 대폭 개정하면서 가입자 대표를 위원회의 과반수가 넘도록 법에 명시한 것은 가입자 참여민주주의의 실현 그 자체였으며,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신뢰의 최소 안전판이었다. 현재 국민연금기금의 100%가 정부 재정 한푼 투여 없이 오롯이 가입자의 보험료 수입만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가입자의 발언권은 중시되지 않을 수 없으며, 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도 가입자의 과반수 참여는 당연히 확보되어야 한다. ‘참여’를 표방한 정부에서 참여민주주의를 퇴행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 않나? 향후 기금이 너무 쌓여 한국 경제의 대재앙이 되리라는, 이른바 ‘기금폭발 현상’을 제어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라도 기금운용 및 제도개혁 과정에 가입자의 의미있는 참여 보장은 필수적이다.
참여정부가 임기 말에 와서까지 이것저것 의욕적으로 제도개혁을 추진하는 것 자체를 굳이 뭐라 하고 싶지는 않다. 참여정부 내내 사회정책을 그렇게 강조하였으면서도 끝내는 경제관료들에 의해 주도권이 행사되고 종국에는 그들에게 일방적인 신임이 부여되는 것에 나름의 ‘깊은 뜻’이 있다고 백번 양해한다 하자.
그러나 국민연금기금까지 경제부처와 경제관료들이 펼치는 위험한 게임의 장에 맡겨지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 훗날 참여정부를 평가할 때 최후의, 최대의 오점을 추가하지 않으려면 연금 왜곡의 제2탄은 불발되어야 한다.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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