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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열성개미’와 ‘동원개미’의 합창

등록 2005-04-03 14:49수정 2005-04-03 14:49

2일 열린우리당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이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아래는 당선자 결과 발표 전에 \'선진한국을 향한 기적소리’라는 퍼포먼스. 사진제공 열린우리당 홍보실
2일 열린우리당 대의원대회에서 대의원들이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아래는 당선자 결과 발표 전에 \'선진한국을 향한 기적소리’라는 퍼포먼스. 사진제공 열린우리당 홍보실

[현장] ‘절반의 성공’우리당 대의원대회가 남긴 과제는?

스스로가 주인공인 ‘개미’들의 정치축제는 흥겹고 역동적이었다.

지난 2일 열린우리당의 당 의장과 상임중앙위원을 뽑는 제2차 전국대의원대회가 열린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행사장을 가득 메운 대의원과 당원 1만5000여명은 손에 막대풍선을 들고, 당가에 맞춰 ‘대한민국 열린우리당’을 목놓아 외쳤다. 본부석 스피커에서는 후보자의 연설과 투개표가 진행되는 긴장되는 순간에도 당가와 ‘독도는 우리땅’,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의 노래와 율동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대의원들은 자신의 지지후보와 상관없이 상대후보에도 열렬한 박수를 보냈고, 선거가 끝난 뒤에는 모두 어울려 대동의 춤판을 벌였다.

당선자 결과 발표 전에 ‘선진한국을 향한 기적소리’라는 퍼포먼스와 대동의 춤판으로 이날 개미들의 정치축제는 절정을 이뤘다. 기관차 ‘열린우리당호’가 참여역을 지나 희망역을 지나는 퍼포먼스가 펼쳐지자 대의원들은 기차놀이로 행사장을 돌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선거기간 동안 날카롭게 서로를 견제했던 8명의 후보들도 대의원들과 함께 어울려 어깨를 걸고 서로를 위로했다. 정치행사장이 이렇게 흥겹고 유쾌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이날 열린우리당의 대의원대회는 한국정치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게 했다.

‘올드보이’도 새내기도 감격한 개미들의 정치축제


참석 대의원들도 당 의장 선거와 상관없이 스스로가 만든 축제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정진길(73·서울 송파구)씨는 “50년 정당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역동적이고 생기 넘치는 당 대회는 처음”이라며 “이런 분위기라면 4월 보궐선거는 물론 내년 지방선거, 2007년 대선도 전망이 밝다”고 환하게 웃었다. 정씨는 지난 56년 민주당 당원으로 시작해 한번도 한눈 팔지않고 정통야당의 길을 걸어왔으며, 지난 11대 국회때는 서울 송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50년 탄압받으며 야당생활을 한 ‘올드보이’에게 덩실덩실 춤판이 어우러진 당 대회가 감격스러운 모양이었다.

“그전에는 야당이라고 해도 돈 내는 기간당원이 드물었고 당원들의 직접 선거라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총재는 다 알고 있고, 지도부는 미리 정해놓고 체육관에서 형식적으로 만세만 불렀지. 그때는 군사정권 시절이라 놀 줄도 몰랐어. 이렇게 춤추고, 노래하고… 상상도 못했어.”

정씨는 “열린 정당의 새로운 모델을 개척해 정치발전의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당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며 “후배들이 자랑스럽다”고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행사장 한쪽에 앉아 미리 준비해온 막대풍선을 두드리며 열렬히 ‘열린우리당’을 연호하던 차윤호(29·서울 광진구 구의동)씨의 감흥도 비슷했다. 차씨는 지난해 입당한 새내기 당원으로, 대의원은 아니지만 현장을 직접 느끼고 싶어서 나왔다고 했다. 당 대회가 처음이라는 차씨는 분위기에 매료돼 있었다.

차씨는 “이렇게 분위기가 좋을지 몰랐다. 이것이 개미(기간당원)들의 힘인 것 같다”며 “적극적으로 대의원도 뽑고 당의장도 뽑는 과정에 참여하면 당이 바뀌고 정치가 바뀌고 세상이 좋아질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 사이에도 막대풍선을 두드리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대~한민국, 열린우리당’을 연호했다.

“기간당원이 기간당원을 지도부로 뽑았다”

당 지도부도 비슷한 감회를 피력했다. 후보자들은 너나없이 “당원들의 상향식 투표로 뽑힌 명실상부한 참여지도부”라고 정통성을 부여했다. 대의원대회 의장을 맡은 이미경 의원은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혁명”이라고 추켜세웠다.

유시민 의원은 연설에서 “기간당원이 기간당원 앞에서 연설하는 것을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생각한다”며 “모든 후보들이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을 약속했기 때문에 오늘 꼴찌를 한다해도 행복하고, 사랑해주시는 당원동지가 있어서 모함을 받고 왕따를 당해도 즐겁다”고 열변을 토했다.

이미경 의장은 “당비를 내는 기간당원에 의한 우리 정당 사상 최초의 혁명적인 전당대회로, 한국 정치를 역동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바꾸어 놓는 뜻 깊은 현장”이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오늘 우리는 당원이 주인되는 정당혁명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당원의, 당원을 위한, 당원에 의한’ 민주정당이자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개혁정당으로 한국정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것으로 자부한다”고 덧붙였다.

개미들, 정당주인으로 당당히 일어서다

열린우리당은 지난 3월초 당의장 예비선거를 시작으로 당의장과 중앙위원, 16개 시도당위원장, 여성위원장, 대의원 등 당의 뼈대와 지도부를 당원들이 직접 선출하는 한 달간의 선거 일정에 들어갔다. 당비를 내는 진성당원들의 상향식 선거를 통해 지역과 중앙 지도부를 뽑아 ‘당원에 의한 정당’, 기간당원이 당의 근간을 이루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정당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의도를 표방한 대장정이었다.

그 결과 자발적인 당비 납부를 통한 기간당원이 현재 25만명으로 늘어났고, 이들에 의해 선출된 1만3461명의 대의원들은 3월말까지 열린 전국 16개 시·도당 전당대회에서부터 갖가지 이변을 연출하며 개미들의 반란과 돌풍을 이어왔다.

이규의 열린우리당 부대변인은 “지난 1기 지도부 때는 시간이 없어 급조된 측면도 있었으나 이번 지도부 선거는 명실상부한 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부를 만하다”며 “한 달 동안의 투표과정에서 당 지도부가 당원 속으로, 국민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 당원과 국민들의 바닥 정서를 읽어낼 수 있었기에 새 지도부는 명실상부한 개혁과 민생의 지도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한 달간 당이 선거를 매개로 국민과 부대끼다보니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50%대에 육박하는 성과를 거뒀고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 대한 자신감도 충만한 상태”라며 “정당의 민주화가 국정운영과 당의 발전에도 엄청난 도움이 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당원 동원·줄세우기 관행 여전, 동원당원이 다수인 현실

그러나 한계도 뚜렷히 드러난 행사였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기간당원보다 구태정치의 상징인 동원당원들이 여전히 다수를 차지한 것은 지도부의 자화자찬을 무색하게 했다. 상당수 대의원들은 자발적인 참여자라기보다는 특정인들의 선거운동원으로 동원된 사람들로 보였다.

시도당 선거과정에서부터 특정후보들이 대의원을 줄세우기 한다는 잡음이 끊이지 않았으며, 당 의장 선거결과도 이런 행태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의원들과 대의원들 사이에서 조직세가 비교적 탄탄했던 문희상, 염동연 의원이 나란히 1, 2위로 지도부에 입성한 것이 잘 말해준다. 재야파의 맏형을 자임했던 장영달 후보도 여론조사 등에서 나타난 열세를 딛고 선거막판 재야파 의원들의 조직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무난히 지도부에 입성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바람선거에 의존했던 김두관 후보는 초반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상임중앙위원에 들지 못했고, 이번 선거 돌풍의 진원지였던 유시민 의원도 겨우 턱걸이를 했다.

조직표가 건재했기 때문에 표를 나눠가지기 위해 후보자간 합종연횡이나 특정후보를 밀어내기 위한 배제투표 등 전략투표가 물밑에서 일어났다는 후문이다.

경북 포항에서 올라온 대의원 이아무개(43)씨는 “여전히 대의원들이 특정후보에 줄서기를 하고, 오늘 지방에서 올라온 대의원 가운데 70% 정도는 동원됐을 것으로 본다”며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평가했다. “한나라당 당원이었으나 지난 대선에 이회창 후보가 마음에 안들어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바꿨다”는 이씨는 “한나라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당원들의 참여가 활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한 참여정당으로 가기 위해선 열성적인 개미들이 좀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유시민 “바람이 조직을 이기지 못하고…”

유시민 의원이 선거 뒤 “결과에 대해 승복한다”면서도 “바람이 조직을 이기지 못하고…”라며 여운을 남긴 것도 동원선거의 아쉬움을 토로한 것으로 해석된다. 여전히 ‘열성개미’들이 ‘동원개미’들을 넘어서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한 당직자는 “기간당원이 25만명을 넘었다고 하지만 동원정치에 익숙한 구 정당 세대들이 주축을 이루다보니 선거과정에서 줄세우기, 동원 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정당 문화가 바뀌고 있는 과도기적 과정이고 자발적인 기간당원들이 더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문제”라고 전망했다.

당원 직접 선거로 지도부를 뽑은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은 열성개미와 동원개미들이 어울린 한판의 정치축제로 끝을 맺었다. 흥겹고 즐거웠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문화를 바꾼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아쉬운 점도 많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의원대회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기간당원들의 열성적인 참여를 바탕으로 100년이 가도 끄덕없는 100년정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열린우리당이 100년 정당이 되는 길은 열성개미들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의미의 참여정당으로,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 꽉찬 정당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박종찬 기자 pj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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