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순 대기자
김효순칼럼
한 10여년 전에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의 맞은편에서 감시카메라가 돌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로 외교관 신분으로 파견된 정보요원들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 카메라가 지금도 작동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공안문제에 밝은 한 일본인 전문가는 최근 “두 나라의 정보기관이 화해는 했지만, 감시는 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쪽 정보요원들의 묘한 만남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후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일본에 대거 들어가면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대단히 서먹서먹했으나, 일본 안의 북한 스파이망 적발이라는 공동과업 달성을 위해 실무진들 사이에 정보 주고받기를 하면서 친밀한 관계를 쌓아갔다. 그런 우호 분위기가 1973년에 일어난 이른바 ‘김대중 납치사건’으로 단숨에 날아가 버렸다. 중정 요원들이 일본에 망명해 유신 반대 투쟁을 벌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도쿄의 한 호텔에서 대낮에 납치해 서울로 끌고 온 것이다. 이 사건으로 협조관계는 단절됐고 문제의 카메라가 설치됐다고 한다. 공안기관들의 화해 모색은 11년 후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이뤄졌다. 한국 쪽은 아웅산 테러 사건 등을 들어가며 경호체제의 강화를 요구해 일본 쪽이 거의 700명에 이르는 안기부 요원들의 입국을 일시 허용했다고 한다. 다시 87년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한항공 여객기가 공중분해된 ‘김현희 사건’이 터지자, 수사공조를 통해 관계가 완전히 복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외형적 화해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고위 공안 관계자들이 익명으로 하는 발언을 보면 한국 정보기관에 대한 멸시가 짙게 배어난다. 깔보는 근거는 대체로 두가지다. 첫째는 특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왜곡 또는 윤색된 정보를 태연히 흘리곤 해 질이 안 좋다고 한다. 둘째는 고문 등 불법적 강압수단으로 얻어낸 자백이 많아 정보의 신뢰성에 의심이 간다는 것이다.
일본의 정보기관으로는 우선 내각정보조사실을 들 수 있으나 외국과 비교하면 규모는 빈약한 편이다. 강제수사권을 갖는 공안경찰과 수사권은 없지만 파괴방지법을 적용해 ‘공안유해 단체’를 해산시킬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법무성 공안조사청 등이 방첩기능을 수행한다. 하지만 이들의 뿌리도 결코 아름답지 않다. 일제 때 좌익은 물론이고 합리적 자유주의자, 종교인까지 무지막지하게 탄압했던 특별고등경찰(특고), 군헌병대, 특무기관, 영사관경찰 출신들이 전후 이름을 바꾼 공안기관을 이끌어왔다. 특정 단체에 위장 잠입해서 터무니없이 죄를 뒤집어씌우거나 불법 도청 등을 하다가 적발된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한국의 대표적 정보기관이 이런 과거를 지닌 일본 공안 쪽으로부터 질이 나쁘다는 평판을 듣고 있는 처지를 보면 기가 막히다. 그렇다고 중정과 후속 기관이 수십년간 남긴 참혹한 유산을 상기하면 터무니없는 비방이라고 그냥 배척하기도 어렵다.
김만복 국정원장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억류됐던 인질들의 구출 작업과 관련해 낯뜨거운 자기선전과 과도한 행동반경 노출로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국정원장 개인의 부적절한 처신이나 정치적 야심이 아니라 조직의 근본적 개혁이다. 주요 선진국의 정보기관은 정보수집과 방첩분야가 대체로 분리돼 있으나 국정원은 여전히 모두 쥐고 있다. 원장 한 사람한테 인사 업무 감찰 권한이 집중돼 내부의 견제 기능이 작동할 여지도 없다. 도청 파문 직후 거세게 일었던 정보기관의 제도적 개혁이 정치권의 관심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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