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복기/공동체팀장
한겨레프리즘
한 달 전쯤 경기도의 한 절에 갔을 때였다. 대웅전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초등학생 또래의 아이가 질문하는 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아빠! 우린 교회 다니는데 왜 여기 와?” 그 아이의 아빠로 불린 아저씨는 조용하라는 듯이 눈만 부라렸다. 서글펐다. 누가 저 아이에게 불교나 절에 대해 어떤 말을 했을지 짐작이 갔다. 마귀, 사탄, 우상숭배 뭐 그런 말일 것이다.
고개를 땅에 떨군 아이가 안쓰러워 “얘야, 하나님은 세상 어디에도 다 계신단다”라고 말하자 그 아이의 아빠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아닌가?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데.
그 아이처럼 어린 시절 교회는 내게 혼란이었다. 따르던 친척 형이 있었다. 마음이 곱고 동생들과 잘 놀아줘 인기가 많았던 형이지만 정작 오래 함께 놀 수 있는 명절 때는 만날 수가 없었다. 형은 제사를 다 지내고 음복을 한 뒤 친척들이 뿔뿔이 흩어질 때가 되어서야 얼굴을 비치곤 했다. 친척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고등학교 간 뒤 예수쟁이가 돼 조상들에게 절도 안 한다”고 혀를 끌끌 찼다. 그렇게 착한 형이 설날과 추석이면 늘 욕을 먹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 형처럼 나도 고등학교 때 처음 교회를 나갔다. 다니던 학교가 미션스쿨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면 여학생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게 더 큰 매력이었다.
그러나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으면서 혼란은 더 커졌다. 충격적인 경험도 했다. 통성기도였다. 목사님은 설교 때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모두 알아서 해주신다고 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소리를 지르며 울부짖고 책상을 치면서 기도할까. 예수님은 “너는 기도할 때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하게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고 하셨는데. 어느 누구도 내게 속시원히 답해주지 않았다.
더 큰 혼란은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는 사람들이 정작 예수님처럼 사는 데는 관심이 없다는 점이었다. 교회에서 만난 어른들은 물론 교목 선생님도 예수님처럼 살라고 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 좋은 대학 가라는 말뿐이었다. 교회를 다닌 지 1년쯤 지난 뒤 발길을 끊었다. 학교의 채플 시간도 건성으로 참여했다.
다시 교회를 만난 것은 20년이 지난 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만난 목회자들을 통해서였다. 우리나라 곳곳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목사들이 있었다. 노숙인, 장애인, 홀몸노인, 버려진 아이들, 외국인 노동자들 등 ‘작은 자’ 곁에는 늘 그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웃 종교에 대해서도 관대했다. 어떤 목사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나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가 목사직을 박탈당할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을 통해 교회를 다시 만났다. 혼란스러움도 많이 사라졌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믿는 이들의 모임이며 우리의 삶 자체가 기도이어야 한다는 그들의 말과 삶은 성경 말씀과 일치했다. 국외 선교에 대해 어떤 신학자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면 한국 교회에 대해 “너나 잘하세요”라고 말씀 하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런 분들을 보면서 비록 교회에 다니지는 않지만 믿음이 되살아 났다. 혼란도 사라졌다. 한 가지만 빼고. 10여년 동안 만난, 성경에 새겨진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목사님들이 이끄는 교회는 신자들이 아주 적었다. 주로 20∼30명. 많아도 100명을 넘지를 않았다. 그 또한 하나님의 뜻일 것이지만 궁금하긴 하다. 예수님, 왜죠?
권복기/공동체팀장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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