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잠수함의 승무원이었다. 구식 잠수함에는 꼭 토끼를 태웠다. 토끼는 산소와 수압 같은 외부의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에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바뀌는지 여부를 사람보다 먼저 느낀다. 잠수함 맨 밑에 들어간 토끼는 그러므로 그 공간의 생명 지킴이였다. 게오르규가 탄 잠수함의 토끼가 호흡 곤란으로 죽자, 선장은 민감한 감수성을 가진 게오르규에게 토끼의 임무를 대신 맡겼다. 게오르규는 그 체험을 바탕으로, 사회를 감시하는 작가의 사명을 ‘잠수함의 토끼’에 빗댔다.
옛날 광부들은 카나리아를 새장에 넣고 탄광에 들어갔다. 무색무취의 유독가스를 판별하는 생물 계기판이었다. 카나리아가 노래를 멈추면 갱 안에는 유독가스가 가득 찼다는 증거다. 알 수 없는 위험을 예보하는 자, 누구인가. 작가는 잠수함 속의 토끼이면서 탄광 속의 카나리아다. 토끼처럼, 카나리아처럼 남들이 알아채지 못하는 위험을 감지하고 경고하는 자들이다.
현실은 바다 밑처럼 어두운 심연이거나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막장인 것 같지만, 또한 순식간에 광포한 모습으로 돌변해 자연과 문명을 삼켜 버리는 지진해일과 같다. 등잔 밑 어두운 부분도 영원히 비밀의 영역으로 남을 것 같지만 아침이면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다. 토끼와 카나리아 구실을 해야 할 사람들이 어찌 작가뿐일까.
권력의 심장부에서 비리의 씨앗을 걸러내고 싹을 잘라야 할 감시체계가 마비됐다.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새나온 것, 느낄 수 없는 미량의 독성들이 쌓이고 쌓여 일순 생명을 앗아가고 정권을 망치고 나라를 어지럽힌다.
지금 뒤늦게 토끼가 숨차게 헐떡인다. 카나리아는 깃털을 파르르, 몸통을 부르르 떤다. 그리고 더듬이를 다친 귀뚜라미가 운다.
마포의 강바람이 매섭게 서울서부지검을 휘돌아 간다. 북악산 위에 먹장구름이 걸려 있다.
손준현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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