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기 논설위원
유레카
실학자 서유구가 1820년 쓴 <난호어목지>는 당시 하천과 바다의 각종 어종을 집대성한 책이다. 정약전이 1814년 쓴 <자산어보>가 흑산도 주변의 바닷고기를 중심으로 어류의 분포와 생태를 기록한 반면, <난호어목지>는 바다와 강의 모든 물고기를 다루고 있다.
‘강어’편에서는 민물고기 55종, ‘해어’편에서는 바닷물고기 78종을 다루고 있으며, 확인하지 못한 다른 어종까지 포함해 모두 154종의 토종 물고기를 다뤘다. 누치를 말하는 눌어(訥魚), 미꾸리를 가리키는 이추(泥鰍), 망둥어를 지칭하는 망동어(望瞳魚) 등 토종 어류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만하다.
이 가운데 ‘은구어’(銀口漁)란 이름이 나온다. 주둥이의 턱뼈가 은처럼 하얗다는 이유로 붙여진 은어의 옛 이름이다. 지금은 섬진강 은어가 유명하지만 예전에는 경남 울진 부근에서 많이 잡혔다. <동국여지승람> 울진현 편을 보면 은구어가 지역 토산물의 하나로 소개된다. 맑은물에서만 살고 수박이나 오이맛의 은은한 향이 난다고 해서 ‘수중군자’ 또는 ‘청류의 귀공자’로 불린다.
서유구가 말기에 쓴 또 하나의 어류 백과사전 <전어지>에는 빙어가 등장한다. 애초 동어(凍魚)라고 불렸으나 서유구는 “동지가 지난 뒤 얼음에 구멍을 내어 그물이나 낚시로 잡고, 입추가 지나면 푸른색이 점점 사라지기 시작하다가 얼음이 녹으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며 빙어라는 이름을 붙였다.
서울시가 올 상반기 한강 생태계를 조사했더니 1950대까지 살다가 사라진 은어와 빙어가 돌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버들치도 발견됐다. 수질이 깨끗해진 탓인지 지속적인 방류 때문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하지만 섬진강 인근에서만 잡히던 은어가 최근 태화강 등 여러 곳에서 잡히는 것을 보면 한강에 은어 낚시꾼들이 몰릴 날도 기대해 볼 만하다.
정남기 논설위원 jnam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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