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5㎝ / 함석진

등록 2007-09-27 18:16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유레카
어떤 단어나 문장을 만나면 이유 없이 멍해질 때가 있다. 두 번 잇따라 나를 그렇게 만든 말은 ‘5㎝’였다. 한번은 지난 6월 개봉했던 일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초속 5㎝>였다. 1초에 몇 센티미터를 간다는 식의 표현을 들어본 적도 써본 적도 없던 나는 아무 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벚꽃이 날려 떨어지는 속도였음을 영화를 본 뒤에야 알았다. 경주에서 발견돼 지난 10일 공개된 마애불상은 ‘5㎝의 기적’으로 불렸다. 바위 위로 넘어진 모습이었지만 정수리 부분이 바위에 걸려 5㎝의 빈틈을 만들었고, 그 사이에서 마애불상은 130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냈다.

시속 몇 킬로미터의 단위로만 살아가는 나에게 <초속 5㎝>는 좀 더 느리게 살아보라 하고, 크고 많은 것들에만 감각의 시선을 돌리는 나에게 ‘틈 5㎝’는 작은 것의 가치를 살피라 한다.

정보와 돈이 빛의 속도로 세계를 오가는 세상, 머물면 뒤처질까 앞만 보고 질주하는 세상. 그걸 돕는 과학과 문명의 이기들. 우리는 행복한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천국 마콘도 마을이 속도와 편리함으로 무장한 문명에 의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그렸다. 마을은 5년 가까이 계속된 대홍수가 탐욕스런 문명을 쓸어간 뒤에야, 느리고 답답하지만 행복했던 옛 모습을 찾아간다. 밀란 쿤데라는 <느림>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나의 마부 걸음걸이의 리듬을 천천히 느껴보고 싶다. 시간의 흐름 속에 그의 걸음걸이는 점점 느려진다. 나는 저 느림 안에서 행복의 징표를 찾는 듯하다.”

정부는 오는 10월2일 남북 정상회담차 방북하는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성사된다면 이왕 걸을 것 느리게 걸었으면 좋겠다. 그 장면을 보면서 천천히 느껴보고 싶다. 느림 안에서 남과 북의 행복의 징표라도 찾아보고 싶다.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