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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복지대통령 감별법 / 이태수

등록 2007-10-01 18:51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바야흐로 대선정국은 ‘그 나름’ 무르익어 가고 있다. 물론 이 표현에 동의하지 않는 냉랭한 가슴들이 적지 않다. 감동과 흥분은커녕 ‘그들만의 리그’라는 조소와 야유가 있고, 차선이 아닌 차악을 고르기도 불가하다는 자괴감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인 허탈에도 불구하고 2007년 대선은 어김없이 역사의 한순간으로 현실이 되고 만다.

서구의 복지국가 발달과정에서 선거가 미친 영향력은 심대하다. 한때 민중의 항거와 무력진압 속에 피를 먹고 발전했던 복지발전의 슬픈 역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20세기 중반부터는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의회 선거 등 각종 선거가 복지정치의 핵심이 되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마침내 우리 사회에서도 복지정치를 논할 만큼 복지정책의 위상은 높아졌다. 다음 정부를 누가 맡더라도 이러한 위상을 무시하기 어렵다. 일자리·육아·교육·노후·건강 등 5대 국민 불안은 극에 달했고, 양극화·저출산·고령화·지식사회화 등 사회적 위험요소는 중산층을 언제라도 절망의 나락으로 끌어내리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런 저변의 상황을 간파한 것인지, 대선 후보를 자처하는 이들의 복지공약은 화려하기만 하다. 권영길 후보의 건강보험 보장률 90퍼센트, 문국현 후보의 유아부터 고교까지 최고 품질의 완전 무상교육, 손학규 후보의 암치료비 완전 무료, 이명박 후보의 기초연금제, 이해찬 후보의 1가구1주택주의, 정동영 후보의 신혼부부 2억 장기대출 등 현란한 복지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얼핏 현상적으로 본다면야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복지제도의 확충과 발전에는 차이가 없을 듯하다. 과연 그럴까? 결코 그렇지 않기에 우리에게는 복지 대통령을 가려내는 감별법이 필요하다. 그들이 교묘히 은폐하고 있는 복지를 바라보는 기본시각과 근본이념을 밝혀내는 혜안이 필요한 것이다.

이 감별법의 첫째는 복지공약이 단순히 복지의 양적 확충이란 관점에서 수립된 것인지, 아니면 복지의 국가책임과 적극적 복지정책 구현을 근간으로 한 복지국가 추구라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인지를 밝히는 데 있다. 노인, 장애인, 여성, 아동, 빈곤층을 위한 평면적인 정책 나열은 시혜적이며 선심성에 불과하다. 복지정책이 인간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데 필수적 요소이며, 자본주의의 시장경제 질서와 쌍벽을 이루는 핵심정책 영역임을 근간으로 삼는 태도가 진정 중요하다.

이는 자연히 둘째 감별법과 연동되는데, 곧 복지와 경제성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경제성장을 통해서, 성장의 과실로 복지문제의 해결을 바라보느냐, 아니면 성장을 위해, 성장에 앞서서 복지에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냐에 따라 복지정책의 실현 가능성이나 진정성은 갈라진다. 예를 들면 일자리 창출이 최고의 유일한 복지정책이란 안이한 발상에 그치지 않고, 좋은 일자리에 진출하기 위해 인생주기에 따라 평생학습 체계와 일자리 복지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발동할 것인지에 대한 설계를 함께 제시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셋째 감별법은 결국 재원 조달 가능성에 있다. 감세를 주장하면서 엄청난 복지공약을 내세우는 이는 허구다. 백번 양보하여 선거국면에서 증세를 용감히 주장하지는 못한다 해도 조세정의에 입각하여 조세재정 개혁을 통하여 막대한 재원조달을 실현할 수 있는 발상의 대전환이 가능한 이를 찾아내야 한다.


복지정치의 주요한 국면인 대선정국에서 국민은 복지 대통령 감별사가 되어야 한다. 병아리 감별사야 실수해 보았자 무정란을 만드는 정도지만, 복지 대통령 감별사로서 실패한다면 5년을, 아니 그 이상을 ‘10 대 90 사회’의 정글에 자신의 삶이 내동댕이쳐지는 상황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참혹한 미래를 당신은 원하는가!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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