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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것 / 윤영호

등록 2007-10-03 18:04

윤영호/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부장
윤영호/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부장
기고
과연 우리 국민은 삶의 마지막을 어디서 맞이할까? 2006년 사망통계를 보면, 가정에서 사망이 30%에 불과하고 의료기관 55%, 병원 이송 중 사망 등이 15%로 나타난다.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병원보다 자택에서 사망하는 국민이 더 많았으나 이제는 아니다. 병원 사망은 10년 전만 해도 18.1%에 불과했으나 2006년 처음으로 전체 사망의 절반을 넘어섰다. 암 환자는 76%가 의료기관에서 숨지는 것으로 나타나 더욱 심각하다. 전통적인 객사와 호상의 개념은 잊혀지고 과거에는 불효로만 여겼던 병원에서의 임종이 어느덧 자연스러워져 우리 국민의 절반이 병원에서 사망한다. 미국은 국민의 75%가, 일본은 90%가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뚜렷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 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게 될 날도 멀지 않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는 거동이 불가능하고 수발을 많이 해야 하기 때문에 집에서 돌보기가 참으로 어려운 건 사실이다. 가족 수가 적고 맞벌이하는 가정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오죽하면 환자보다 가족의 우울증이 더 심각하다고 할까? 그렇다고 환자를 돌보자고 직장을 쉴 수도 없다. 집의 주거환경은 임종하기에 부적절하며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렵고,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것조차 불편하다. 환자도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아서 정든 집을 떠나 병원으로 간다. 혹자는 가정에서 환자를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병원에서 임종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병원 현실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라 하더라도 일단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 의사들은 죽음과 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의학적으로는 무의미할지라도 인공호흡기와 같은 특수한 조처를 하지 않으면 환자가 방치되고 있다고 보는 현실 때문이다. 불필요한 중환자실 입원, 심폐소생술 등 소모적인 의료는 죽음을 비인간적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의료재정에도 상당한 부담이 된다. 실제로 사망 전 2개월 동안의 의료비가 1년 동안 의료비의 약 50%나 차지한다.

그렇다면, 어디서 죽음을 맞는 것이 바람직한가? 과거나 현재나, 동서양을 떠나서 가장 이상적인 곳은 자기집이다. 좀더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사랑하는 가족들이 임종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수적인 의료서비스를 받으면서도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삶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반드시 집일 필요는 없다. 죽음의 순간에는 통증과 같은 고통을 줄여주고, 삶의 정리와 함께 인간적 돌봄과 사랑 그리고 감사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 현재의 의료기관은 이런 환경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필요하다면, 병원내 임종실을 마련하는 등 의료기관의 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 이제는 죽음과 관련된 가족들의 부담, 가치관, 보건의료 체계, 사회 환경 등 포괄적이면서도 개방적인 논의를 통해 두루 공감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할 때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국민의 정서상, 누가 선뜻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는가? 장례식장이나 화장장을 혐오시설로 생각해 집 주위에 설치하기라도 할라치면, 집값 떨어진다고 소송을 하거나 데모를 한다. 말기환자의 품위있는 죽음을 위한 호스피스 의료기관조차도 혐오시설로 인식한다. 미국은 집 가까이 있는 교회 주변에 무덤을 마련해서 쉬 접하며, 죽음을 삶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느끼고 친숙하게 대한다. 하이데거가 말하듯, 인간은 죽음을 향한 존재다. 이제 죽음의 문제를 피하기보다는 공론화해서 국민의 의견과 지혜를 모아 언제 찾아올지 모를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모두의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윤영호/국립암센터 암관리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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