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4.05 21:58
수정 : 2005.04.05 21:58
회사의 몸값이 올라간다는데 마달 사원은 없을 것이다. 스스로 브랜드 가치를 낮추려 한다면 분명 아이러니다. 그 많은 경제이론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그런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나라 안팎 모두 열 군데서 눈독을 들인 ‘두꺼비 경매’는 일단 3조원을 넘게 써낸 하이트 컨소시엄에 떨어졌다. 독과점 고비만 넘기면 맥주회사 하이트가 진로 소주의 새 임자가 된다. 판정관은 맥주와 소주가 술은 술이되 같은 술이 아니라는 견해로 하이트 편에 선 듯하다.
그런데 진로 노동자들은 제발 자신들의 몸값으로 3조원이 넘는 비싼 값을 치르지 말라고 호소한다. 팔리는 회사로서는 입이 떡 벌어질 법도 한데 사정은 정반대다. 현재 법정관리에 놓인 진로의 주인은 사실상 채권단들이다. 그것도 외국계 채권단이 그 중심에 서 있다. 비싸게 팔려봤자 좋을 게 하나 없는 처지다. 몸값은 고스란히 외국자본의 손에 떨어지고, 비싼 보석금을 치른 새 주인은 본전을 뽑으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애먼 곱사등이가 따로 없다.
비극의 제1막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올랐다. 지진해일처럼 밀려온 빚잔치를 견디지 못하고 화의 기업으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러나 각본은 훨씬 전부터 쓰여져 왔다. 성장성은 그리 높지 않지만 안정적 시장 점유율로 소젖 짜듯 현찰을 안겨주는 기업, 곧 ‘캐시카우’의 전형이 진로다. ‘소주전쟁’에서 승리해 넘볼 수 없는 1위였다. 캐시카우를 물려받은 소유주의 2세는 미다스처럼 여기저기 손을 댔다.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해 11월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의 만남은 비극의 절정이다. 호흡 곤란을 겪던 중환자는 청진기와 돈가방을 든 자비로운 양의에게 생살여탈권을 맡겼다. 의사는 동물병원 중환자실의 두꺼비가 겉보기와 달리 소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간파하고, 의술상인의 본색을 드러낸다. 헐값에 넘겨라,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 정부와 채권단은 언감생심이었다.
의술상인이 손을 쓸 필요도 없었다. 두꺼비 스스로 털고 일어난 것이다. 높은 브랜드 파워, 종업원들의 피땀이 밑거름이 됐다. 두꺼비 살리기에 나선 주당들의 사랑도 톡톡히 한몫했다. 그러나 이미 목에는 사슬이 매달린 채였다.
2003년 채권단이 진로의 법정관리에 반대했을 때 한사코 법정관리로 몰고 간 이는 자비로운 의사였다. 진로 몰락의 원흉으로 꼽히는 골드만삭스 등이 당시 사들인 진로 채권은 2700억원. 원금의 10%도 안 되는 헐값이다. 매각이 이뤄지면 이들 외국계 자본은 이자까지 회수하고 채권 장사로 2조원이 넘는 시세 차익을 얻게 된다. 채권 원금을 돌려받는 형식이어서 세금을 물리기도 어렵다고 한다.
삼성전자를 능가하는 영업이익률, 소주시장 점유율 54%, 증류주 부문 세계시장 판매량 1위. 두꺼비의 목에 달린 매물 정보다. 외환위기 때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도대체 망할 수 없는 기업이다. 2세가 회삿돈을 주머닛돈 쌈짓돈처럼 부리지 않았더라면, 정부와 채권단이 옥석 가리지 않고 부실채권을 파는 데 급급하지 않았다면, 샤일록만큼 냉혹한 외국자본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알았더라면, 적대적 인수에 속수무책일 정도로 법규가 허술하지 않았더라면 ….
지난해 우리나라 성인 1명이 마신 2홉들이 소주 90병 가운데 50병이 진로다. 이만큼 친숙하고 애환을 함께해 온 상품이 또 어디 있을까. ‘국민 기업’이라는 말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는다. 네티즌들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주범인 후소사를 지원하는 극우기업에 진로를 팔 수 없다며 아사히 맥주 컨소시엄에 반대하고 나선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다. 진로의 비극은 일제의 침탈을 맞은 조선을 떠올리게 한다. 무능한 왕조, 교활한 외침에 충직한 백성만 죽어났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극은 막을 내려도 술잔에 어린 두꺼비의 눈물은 오랫동안 마르지 않을 것이다. 어이없고 모진 일을 당했기 때문이다. 무능한 소유주 2세와 약탈적 외국자본의 틈바구니에 끼인 기업이 진로뿐일까. 누구를 탓하랴!
정영무 경제부장
yo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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