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복기/공동체팀장
한겨레프리즘
농촌에서 만난 농민들의 주장이다. 주장이라고 함은 데이터를 찾지 못해서 그렇다. 내용은 도로 건설과 농촌 살림살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우리나라 도로망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방을 다니면서 감탄할 때가 많다. 고속도로의 품질은 아우토반을 자랑하는 독일 못지 않고, 고속도로와 그에 버금가는 4차선 도로가 온 나라에 촘촘히 깔려 있다.
하지만 의아스러울 때도 있다. 차가 별로 다니지 않는 도로가 자주 눈에 띄기 때문이다. 평일에 지방의 도로를 한번 달려 보라. 시야에 차량이 한 두 대밖에 들어오지 않는 도로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지방 곳곳에서는 도로 건설이 한창이다. 왕복 2차선으로 교통량을 감당하기에 무리가 없을 것 같은 곳인데도 4차선 도로를 새로 닦고 있는 곳들도 있다.
도로 건설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지역 개발이다. 농촌 사람들을 만나면 열에 일곱 여덟은 도로 건설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 도로가 뚫리면 지역 경제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이제 거의 신념이 된 듯하다. 모두들 그렇게 배웠다.
요즈음도 지자체 단체장과 국회의원이 추진하는 주요한 일 가운데 하나가 도로 건설이다. 정치인들의 실적 과시에 이보다 확실한 게 없다.
하지만 지역 특히 농촌을 되살리는 일에 관심을 갖고 농촌에 뛰어든 젊고 ‘가방끈 긴’ 농부들 가운데 도로 건설이 득보다 실이 많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다. 그들은 큰 도시와 작은 지자체 사이에 4차선 도로가 만들어진 뒤 일어난 현상을 근거로 든다. 원주시와 횡성군, 군산시과 서천군, 전주시와 진안군, 대구시와 성주군 등 도시와 주변의 군 단위 지자체에 사는 젊은 농민들은 시원하게 쭉 뻗은 도로를 따라 작은 지자체의 부가 도시로 마구 흘러나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도로가 만들어진 뒤 군 단위 지자체에 사는 주민들의 도시 쇼핑 나들이가 크게 늘었다. 주말이면 이들은 널찍한 도로를 따라 부근 도시의 대형 마트로 장을 보러 간다. 승용차로 30분에서 1시간만 달리면 ‘삐까뻔쩍한’ 쇼핑몰과 패스트푸드점이 있다. 뼈빠지게 농사지어 번 돈은 그렇게 도시에서 소비된다. 충남 서천군의 한 공무원은 “군산과 서천 사이에 금강 하구둑이 만들어지고 도로가 뚫리자 주말이면 군민들이 대형 마트에서 쇼핑을 하기 위해 군산으로 몰려간다”고 안타까워했다.
4차선 도로는 농촌 정주 인구 감소에도 영향을 끼쳤다. 예전에 교통이 불편할 때는 교사, 공기업 직원, 회사원 등 농촌 마을의 ‘고소득층’ 대부분이 그 마을에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가 확충되면서 이들은 도시로 주거지를 옮기고 출퇴근을 시작했다. 또 돈 좀 만진다는 농촌의 중산층들도 자녀 교육을 위해 가까운 도시로 이사를 갔다. 고향 마을은 삶의 터전이 아니라 일터로 전락했다. 차 없고, 돈 없고, 구매력도 별로 없는 가난한 시골 노인들만 하루 두 세 번 오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읍내 장터로 간다.
잘 닦인 도로는 지역 관광산업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농민들도 있다. 웬만한 시골 마을은 지나쳐 가는 곳일 뿐 먹고자고 하는 곳이 아니다. 1980년대만 해도 주말이면 여인숙이나 민박집에 손님이 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고 한다. 더 답답한 것은 지자체 단위의 경제지표가 없다 보니 도로 건설이 지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가늠할 잣대가 없다는 점이다. 사회 기반시설 구축이나 큰 공장유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도로 확장과 건설은 계속되고 있다. 일부 농민들과 농촌 지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도로가 농촌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도로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로의 ‘죄’를 의심하는 농민들은 점차 늘고 있다. 권복기/공동체팀장 bokkie@hani.co.kr
잘 닦인 도로는 지역 관광산업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농민들도 있다. 웬만한 시골 마을은 지나쳐 가는 곳일 뿐 먹고자고 하는 곳이 아니다. 1980년대만 해도 주말이면 여인숙이나 민박집에 손님이 들었지만 지금은 거의 없다고 한다. 더 답답한 것은 지자체 단위의 경제지표가 없다 보니 도로 건설이 지역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가늠할 잣대가 없다는 점이다. 사회 기반시설 구축이나 큰 공장유치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도로 확장과 건설은 계속되고 있다. 일부 농민들과 농촌 지역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도로가 농촌의 생존을 위협하는 적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도로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도로의 ‘죄’를 의심하는 농민들은 점차 늘고 있다. 권복기/공동체팀장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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