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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인의마을] 사초를 하며 / 한미영

등록 2007-10-14 18:48

시인의마을
몇 년 만에 찾아간 봉분에는 장대비에 패어나간 자리가 흉하게 남아 있습니다 흙 속에나 깊이 묻혀 있어야 할 시간들이 새어나와 서성입니다 아득한 저승길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시간이 이렇게 길을 끌고 나와 있습니다 새순 대신 돋아 나오는 잡초들은 모두 뽑아 버리기로 합니다 공설묘지 입구에서 사 들고 올라간 마른 떼뭉치를 풀어 봉분을 덮습니다 죽은 적막을 감싸안기라도 하듯 활개 뒤에서 양팔 벌리고 선 아카시나무 몸통도 낫으로 쳐냅니다 굵은 가지를 찍을 때마다 심하게 우는 소리들이 터집니다 어쩌면 진통제를 맞으며 마지막을 버티셨던 당신이 신음을 다시 토하는지도 모릅니다 밑동까지 완전히 잘려진 나무 오히려 편안해 보입니다 사초제를 맞으며 체념하듯 저 혼자 눈을 감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이렇듯 적막한가요 오래 전 이 흙 속에 묻힌,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아버지의 시선처럼

-시집 〈물방울무늬 원피스에 관한 기억〉(문학세계사)에서

한 미 영

경북 안동 출생.

안동대 국문학과 졸업. 동국대 대학원 국문학과 석사 수료.

2003년 〈시인세계〉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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