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로마 제일의 웅변가로 꼽히는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기원 전 106~43)는 설득력으로 팽팽한 달변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마흔셋에 최고의 지위인 집정관(콘술)에 올랐다. 그 해 내란에서 나라를 구함으로써 ‘국부’라는 존경스러운 칭호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말년은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니었다. 기원전 49년 라이벌 카이사르에게 패하여 정치적 낭인이 되었고, 3년 뒤엔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아내 테렌티아와 이혼했으며, 이듬해에는 가장 사랑했던 딸 툴리아를 잃었다. 그 힘든 시절에 그는 수많은 글을 썼는데, 그 글들이 라틴어 산문 문학의 정점을 이루었다.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문장가로도 이름을 남겼다. 그 시기에 쓴 글 가운데 하나가 <노년에 관하여>다. 늙음을 걱정하는 젊은이들에게 죽음 앞의 노년이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님을 이야기하는 그 글은 적잖은 풍파를 겪고 이미 노년에 이른 그 자신을 어루만지는 글이기도 하다. 키케로는 말한다. “인생은 단계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네.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원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만 거둬들일 수 있는 자연의 열매와도 같은 것이라네.” 체력은 약해져도 원숙한 정신의 힘이 그 빈 곳을 메워준다는 걸 다음과 같은 반문으로 설득하기도 한다. “밀론은 어깨에 황소를 메고 올림피아의 경주로를 따라 걸었다고 하네. 한데 자네는 밀론의 체력과 피타고라스의 정신력 가운데 어느 것이 자신에게 주어지기를 더 바라는가?”
일흔을 한참 넘긴 뒤 장편 <그 남자네 집>을 쓰고 다시 3년 만에 단편집 <친절한 복희씨>를 펴낸 작가 박완서씨는 키케로가 말하는 그 정신력 구현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작가는 그 단편들이 “(노년의)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라고 말하는데, 그렇게 자기를 위안하는 일에도 키케로적 정신력이 필요하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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