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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07 21:21 수정 : 2005.04.07 21:21

수동카메라를 써오다 2년전 디지털카메라를 구입했다. 편리하고 신기했다. 사진찍기에 거의 돈이 들지 않게 되었다. 필름을 살 필요 없고, 현상과 인화비가 안 들었다. 충전한 배터리만 있으면 달리 필요한 게 없었다. 메모리카드를 확인해 저장공간을 마련해주면 충분했다. 수동카메라처럼 조작할 게 없고, 잘못 찍어도 아까울 게 없으니 아이들에게 셔터를 누르게 해도 걱정없다. 잘못된 것은 지우면 되니.

지난 시절 사진술을 익힌 소수가 누리던 이미지 창작의 권리를 이제 누구나 맘껏 향유하고 있다. 500만화소 카메라폰이 출시되었고, 1000만화소 카메라폰 개발도 시작되었다. 디카와 휴대전화를 빼놓고는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실재 대신 그를 모방한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다.

최근 만난 한 사진작가는 오랫동안 써오던 필름카메라 대신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사용법을 익히고 있었다. 10년 넘게 오지에 있는 분교들을 찾아 작품활동을 해오던 이였다. 도시화와 산업화에 밀려 사라져가는 전국 곳곳의 분교들과 그 곳에서 들꽃처럼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오던 작가의 창작수단도 변화를 겪고 있었다. 디지털카메라로 바꿔든 작가는 첨단문물이 가져다준 편리함 앞에서 고민스러워했다.

“그동안 사진작업은 촬영 이후에도 상당한 노력이 들어가야 했다. 피사체를 보면서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는 노력 못지않게, 현상과 인화의 과정마다 선택과 판단을 해야 했다. 사람이 개입하는 그 과정마다 판단의 효과는 달랐고 우연도 주요하게 작용했다. 지금은 그럴 필요없이 기계가 다 알아서 해준다. 사람이 노력할 필요가 없어졌지만, 사람이 고민해서 판단한 것보다 더 뛰어난 결과를 낳는다.”

이 작가는 “요즘엔 잘 찍은 사진은 많은데 좋은 사진이 드물다”는 충무로 ‘사진쟁이’들의 한탄을 전했다. 장비의 발달로 노출 색감 인화 등이 완벽하지만, 찍은 사람의 생각과 의도가 살아있는 깊이있는 사진이 드물다는 얘기다. 창작의 편리함이 깊이를 빼앗는가?

전문가들처럼 현상과 인화과정의 효과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디카는 이미지를 만들고 바라보는 데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필름카메라로는 필름을 현상소에 맡겨 인화물을 얻어야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기다림은 사진을 얻기 위한 필수조건이었다. 디카로 찍은 사진은 바로 확인이 가능하다. 실수를 해도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지우고 다시 찍고 확인하면 된다. 필름카메라는 미리 구도를 잡고 사진에 담을 메시지를 생각한 뒤 한 눈을 감은 채로 결정적 순간을 기다렸다. 디카로 찍을 때는 찍고 나서 구도와 메시지를 확인한다. 아니면 삭제한다. 한 장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르기 전에 생각하던 것이 일단 여러장을 찍고 난 뒤 ‘삭제 보관’을 선택하는 것으로 변화했다. 만족하지 못하는 결과물에 대해 “삭제하시겠습니까”라고 디지털도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묻는다. “예/아니오”뿐인 선택에서 “예”를 누르면 깨끗이 사라진다.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지 않아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얻었다는 것은 편리하고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 편리한 도구로 인해 ‘생각하고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훼손당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디카를 써보니 불만이 있긴 하지만, 다시 필름카메라로 돌아가게 될 것 같지는 않다. 디카는 수동카메라의 장점을 더 수용하는 쪽으로 변모할 것이다. 디지털이 무조건 아날로그보다 우수한 것은 아니다. 디지털에 맞춰 사람이 변형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에 맞게 디지털문화와 도구를 만들고 변모시켜야 한다. 사람은 0과1, 예와 아니오의 선택으로 치환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속성을 지닌 연속적인 존재인 까닭이다. 잘못된 판단과 결과도 다 ‘삭제’할 것이 아니다. 불완전한 판단과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사람은 연속성을 이어간다. 수고롭고 번거로운 과정을 단축시켜준 편리한 디지털도구들이 우리의 사유과정마저 단축하고 그 판단의 궤적을 지우게 할까 우려스럽다.


구본권/ 온라인뉴스부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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