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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산송 / 이본영

등록 2007-11-12 18:08

이본영 국제뉴스팀 기자
이본영 국제뉴스팀 기자
유레카
조선에서는 죽은 자들의 자리다툼이 산 자들에 못지 않았다. 풍수사상이 널리 보급된 결과로 산의 묏자리를 둘러싼 쟁송을 뜻하는 ‘산송’이 사회문제가 되기까지 했다.

일급 명당은 한정돼 있고 이를 차지하려는 사람은 많으니, 불법과 편법이 횡행했다. 남의 산에 슬쩍 묘를 쓰는 투장, 기존 분묘구역에 몰래 묻는 압장, 금지구역을 침범하는 암장, 사기를 쳐서 묘지를 확보하는 유장, 권세를 휘둘러 땅을 빼앗는 늑장이 그것이다. 몰래 주검을 묻고는 들키지 않으려 봉토를 하지 않는 평장이나, 땅 속에 표지를 묻었다가 나중에 이를 근거로 점유권을 주장하는 매표점산이라는 기발한 수법까지 동원됐다. 조상을 어디에 모시느냐에 따라 후손의 운명이 좌우된다 하고, 나라에서 음양과를 치러 왕가의 묏자리를 보는 지관을 뽑을 정도였다.

이런 열기가 산송을 빈발하게 해 임금까지 성가시게 했던 모양이다. 영조는 “근자에 상언(사대부가 임금에게 올리는 탄원)한 것을 보니 산송이 열에 여덟, 아홉이나 된다”고 개탄했다. 산송은 관아의 주요한 재판거리가 됐고, 이를 둘러싼 뇌물수수와 편파적 재판이 물의를 빚었다. 모함과 폭행, 분묘 훼손 사건도 이어졌다. 산송 때문에 허구한 관·민이 곤장을 맞거나 투옥당하고, 관찰사가 쫓겨났다. 영조는 “늑장·유장·투장 같은 것을 각별히 엄금하고, 법대로 시행하고, 수령 또한 잡아다 죄를 묻고”라며, 비리를 엄단하라는 특별지시까지 내린다. 그는 묏자리를 뺏는 것은 다른 이의 집을 찬탈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논리도 폈다.

장묘문화는 가장 보수적인 문화로, 다른 분야보다 변화가 더디다는 말도 있다. 가톨릭교도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조상신 덕을 보려고 다시 선조들 묘를 옮겼다 한다. 보수 정객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가 꿈을 이룬다면 다시 산송이 빗발치지 않을까?

이본영 국제뉴스팀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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