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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기고] 삼성사건과 청와대의 궤변 / 정병호

등록 2007-11-16 18:37수정 2007-11-17 15:18

정병호/서울시립대 법정대 교수
정병호/서울시립대 법정대 교수
기고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검찰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제 청와대까지 나서서 딴지를 거는 형국이다. 14일 삼성특검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그러나 청와대는 즉각 법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재검토를 촉구했다. 수사 대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삼성에스디에스 관련 부분 등은 검찰이 수사 중인 사안인데다 에버랜드 관련 부분은 대법원에서 심리가 진행 중인 사건으로 특검의 수사 대상으로 부적절하며, 과거 특검에 비해 수사기간이 너무 길다는 것이다.

이제 막 발의되어 국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법안에 대해 이처럼 신속하게 대응하는 청와대의 뜻이 무엇인지도 알기 어렵다. 국민은 삼성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권력을 보아왔다. 국가기강을 흔들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삼성사건’이 한 내부자의 고백으로 처음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청와대의 첫 일성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다른 사건, 예컨대 최근의 연세대 부정편입학 사건에서 보여준 청와대의 신속한 대응과는 너무나 차이가 난다.

이번에 청와대가 특검법안의 문제로 지적한 사항들은 궤변에 불과하다. 먼저 수사대상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것은 특검법안 재검토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이번 삼성사건의 규모와 폭발력을 감안하면, 특검의 범위가 넓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문제된 사건은 현재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이라는 이유로 특검 수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 또 특별검사제도가 검찰의 수사에 대해 ‘보충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도 특검법안 재검토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이런 원론적인 설명은 기실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에 특검법안이 제출된 것은 바로 검찰의 고위간부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런 상태에서는 검찰이 수사해봐야 그 공정성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재 불법상속 의혹사건의 핵심인 에버랜드 전환사채 부정발행 사건 공판은 조작된 증거에 기초하여 진행되었다는 양심선언이 있었다. 바로 이 때문에 과반수의 의원들이 특검법안을 제출한 것이다. 또 수사기간이 지나치게 넓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사건이 크고 복잡하면 수사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검찰이 수사하면 더 짧은 시일 안에 완결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양심선언을 한 김용철 변호사는 삼성사건을 모두 조사하려면 한 4년쯤 걸린다고 했지 않은가?

이 모든 이유가 어설프다고 생각하는지, 청와대는 급기야 특검 무용론까지 설파하고 나섰다. “특검만으로 소기의 수사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우려되는 대목”이라며 “아시다시피 특검은 수사의 효율성에서 일반 검찰 수사보다 많이 떨어지는 면이 있는 것도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무용한 특검을 이 정권 들어서 벌써 몇 번이나 했으며, 하필 삼성이 문제되는 이 시점에 그런 무용론을 제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청와대가 특검법안을 공직부패수사처법안과 연계시키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공수처법안 자체도 논란의 여지가 있어서 그 통과가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 자체가 바로 청와대가 우려하는 검찰권의 제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삼성특검법안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권을 무력화하여 국법질서를 심각하게 흔들 수 있다”고 경고까지 하지 않았는가? 이번 삼성사건의 본질은 떡값 검사 리스트가 아니고 삼성의 전방위적인 국법문란 행위 그 자체임을 청와대는 모르는 모양이다. 과거 대북송금특검 등에서 청와대가 보여준 태도가 오버랩 된다.

‘삼성이 바로 서야 나라가 선다.’ 외국의 투자자들도 이번 사건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되는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정병호/서울시립대 법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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