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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효순칼럼] ‘상봉 복권’ 당첨된 하루

등록 2007-11-18 18:11

김효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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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칼럼
어지럽다. 대통령 선거를 한달 남겨두고 정치권의 드잡이는 갈수록 볼썽사나워지고 삼성의 비자금 의혹은 한 수 높은 비리의 결정판 같은 냄새를 진동시킨다.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숨이 막힐 듯한 현실세계에서 잠시 벗어나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는 개인적 경험을 했다. 로또복권 당첨보다도 더 어렵다는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 뽑힌 덕분이다.

지난 15일 아침 서울 명동에서 남산 쪽으로 오르는 길을 걸었다. 노랗게 물든 은행잎들이 넘쳐흘렀지만 늦가을의 정취를 즐길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대한적십자사의 화상상봉센터로 서둘러 발을 옮겼다. 임시 대기장이 마련된 방에 들어가니 어머니의 함자가 적힌 큰 서류봉투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낡은 흑백사진 두장과 컬러사진 한장이 나왔다. 두개는 남자의 독사진이고 나머지 하나는 가족사진이다. 나로서는 본 적이 없는 생면부지의 사람들이다. 북쪽에서 온 사진들이라는 생각에 머릿속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가족사진은 30여년 전쯤 친구집에 놀러 가면 대청마루의 벽에 걸린 사진액자에서 흔히 볼 수 있던 것과 비슷했다. 남자들은 뒷줄에 서 있고 30, 40대의 여자들이 아이들을 안고 앞줄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사진 속의 낯선 인물들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들의 얼굴에 어머니의 용모가 판박이처럼 뚜렷이 남아 있다.

나의 집에는 이런 가족사진이 없었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부모가 자녀 셋만 달랑 데리고 남으로 왔기 때문에 가까운 피붙이가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소학교라 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친척을 가리키는 어려운 호칭은 말할 것도 없고 이모·고모·외숙모·삼촌이란 말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자랐다. 외가라는 말도 몰랐으니 여름방학에 갈 만한 곳도 없었다. ‘삼팔따라지’라며 업신여김을 받던 이산가정에서 자란 분들은 저마다 유별난 경험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세는 나이로 92살인 어머니는 7남매의 맏이로 남동생과 여동생이 셋씩 있었다. 북에 있는 부모 형제들을 잊은 날이 없겠지만,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진작 접었는데 갑자기 적십자사에서 북의 가족들을 만나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온 것이다. 평양의 화상상봉장에는 어머니의 직계 형제 가운데 막내 여동생이 셋째 올케와 함께 나왔다. 다른 동생들은 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바랜 가족사진에서 청장년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동생들이 저세상 사람이 된 것이다. 그토록 동생들을 그리워했던 어머니는 막상 막내동생을 티브이 화면으로 보자 한동안 우시더니 ‘반갑다’ ‘건강해라’는 외마디 말 외에는 제대로 대화를 이어가지도 못했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데다 손이라도 잡아볼 수 없는 만남이니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지난주 이틀간 진행된 7차 화상상봉에 참여하는 행운을 잡은 남북의 이산가족은 78가족 518명이었다. 2005년 6월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화상상봉 합의가 이뤄진 후 6차까지 479가족 3245명이 만났다고 한다. 대면상봉을 포함해 남북 당국 간에 큰 시혜라도 베풀듯이 찔끔찔끔 진행되는 상봉행사에 ‘당첨’되는 사람들은 여전히 극소수다. 9월 시점에서 남쪽의 이산가족정보통합센터에 등록된 이산가족 찾기 신청자는 12만6209명인데 이 가운데 3만2296명이 숨졌다.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는 90대 이상의 이산가족들이 날마다 10여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고 말한다. 대통령선거라는 거대한 게임판에 모든 것을 건 후보들과 참모·측근들의 머리 한 귀퉁이에 생사확인조차 못하고 숨져 가는 이들에 대한 배려가 조금이라도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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