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30년 이상 한국 현대정치사의 한 축을 담당해 왔던 민주개혁 세력들 안에서 범여권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절박하게 표출되고 있다. 뜻하지 않게도 보수진영 후보는 극적으로 양분되어 있는데도 범여권 후보들에 대한 국민들의 얼어붙은 시선은 풀릴 줄 몰라 지지율 면에서 참혹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물론 이런 시선을 받아 마땅하다 하겠다. 통합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 경선을 통해 갖은 추태를 벌였던 것은 차라리 낫다. 지금은 극우에서 좌까지의 인사들이 모인 ‘잡탕’ 정당으로서의 한계가 또다시 재현되고 있다. 예전부터 행세해온 경제관료 출신 등 보수 논객들은 ‘차별 없는 성장’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차라리 정통시장주의를 천명하자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 좌파 신자유주의의 재판이 따로 없다.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는 여전히 대중 정치에 착근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미래가치와 정치질서를 담당할 미래세력으로서 잠재성은 있으나 그것이 현실로 국민에게 각인되기에는 너무 시간이 없고, 부족한 시간을 메우기에는 내부 동력 또한 너무 약하다. 눈사태처럼 파괴력 있는 행보를 하지 못함을 공중파로의 노출 부족으로만 치부해버릴 수 있겠는가? 냉정한 현실정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눈같이 흰옷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이어야 한다. 민주당은 말해 무엇하랴? 불임정당임을 깨닫지 못하고 사라져야 할 지역주의의 망령에 기댄 채 스스로의 초라한 자화상만을 확인할 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패배주의에 젖어 예서 멈출 수는 없다. 무조건 민주세력의 재집권만이 능사요 당위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의 또다른 미래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이 땅의 민주와 진보, 개혁을 논했던 집단의 존재의미를 이대로 송두리째 부정당할 수는 없다. 향후 한국 사회의 수십년을 시장만능주의와 약탈적 세계화에 온전히 맡길 수는 없으며, 그로 인해 국민 대다수가 더욱 더 비인간적인 단말마적 삶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러한 절망의 미래에 국민들이 볼모로 잡히지 않으려면 후보단일화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그렇지만 맹목적인 단일화는 아니다. 이는 그 어떤 상승효과도 없으면서 국민에게 내보일 수 있는 최후의 진정성까지 훼손시키며 결국 궤멸이란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면 과연 어떤 형태로, 언제, 누구와, 어떤 기준으로, 그리고 어떤 절차를 통해 단일화해야 한다는 것인가?
적어도 미래의 가치와 진보적인 정책을 중심으로 정책연합 형태의 단일화가 후보등록 이전에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 빠질 수 없는 요소는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주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지지율을 논하면서 의도된 승리를 위해 추악하게 경쟁하며 조직력을 과시하는 방식이나 정치공학적인 구태의 지분나누기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결국 진보적 정책의제, 예컨대 양극화해소 정책 등 10대 의제 등을 합의하고 국민적 공증절차를 거친 뒤, 새로운 가치와 정책을 수행하는 데 누가 더 적합할 것인가, 그리고 대선 진검 승부에서 누가 더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아름다운 양보’를 이루어내야 한다. 솔로몬왕 앞에서 자신의 아기를 죽일 수 없어 스스로 어머니이기를 포기한 그 진정성을 발휘하는 자만이 이 시대를, 이 땅의 국민을, 그리고 미래의 개혁진보세력을 구할 수 있는 자다. 누가 이러한 진정한 용기를 가졌는가? ‘아름다운’ 후보단일화. 이를 향한 역사의 초침은 오늘도 어김없이 돌아가고 있다. 째깍 … 째째깍 ….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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