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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땅이름] 은냇골 이야기 / 허재

등록 2007-11-21 18:49

땅이름
땅이름도 사람이 살면서 만들어 놓은 것인 만큼 삶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오영수의 <은냇골 이야기>는 전설적인 마을인 은냇골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는 후손을 이어갈 수 없게 된 은냇골 전설을 배경으로, 머슴살이를 하다가 주인집 조카딸과 눈이 맞아 아이를 갖게 된 김 노인, 형의 노름빚을 갚고자 자신도 노름에 끼어든 뒤 줄행랑을 친 박 생원처럼 숨어살게 된 사람들의 삶이 애절하게 그려져 있다.

이와는 달리 땅이름에 남아 있는 ‘은냇골’ 전설은 대체로 지사적인 면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조선 때 이름난 선비가 사화(士禍)를 피해 은둔하면서 생긴 이름이 ‘은냇골’이며 ‘은천동’이라는 식이다. ‘은냇골’은 ‘숨다’를 뜻하는 한자어 ‘은’과 토박이말 ‘내’, 그리고 마을을 뜻하는 ‘골’(고을)이 합쳐진 말이다. ‘고을’ 대신에 ‘골짜기’를 뜻하는 ‘골’이 합쳐질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은냇골은 ‘은천동’이나 ‘은천곡’으로 변화한다. 문헌에 나타나는 은천동으로는 <삼국유사> 권5의 혜통 설화가 있다. 혜통은 신라 신문왕 때 스님으로, 사람을 해치는 교룡을 쫓아냈다는 설화의 주인공이다. 그가 살았던 곳이 경주 남산의 은천동이다. 또한 지금의 경상북도 황간면에 합쳐진 ‘청산현’의 ‘은천소’도 이 유형의 땅이름이다. 혜통이 수도하던 땅이 은천이었으며, 백운정을 짓고 은둔하던 땅이 청산현의 은천이다.

은둔하는 선비 이야기든 평범하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이야기든 도처에서 발견되는 ‘은내’에는 사람들의 삶과 혼이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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