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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고양이 / 여현호

등록 2007-12-05 18:45수정 2007-12-06 18:20

여현호 논설위원
여현호 논설위원
유레카
중국 문헌 <위략>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조조와 동향인 정배는 작은 이익을 탐하는 사람이다. 관리로서 직권을 남용해 자기 집의 여윈 소를 관아의 살진 소와 바꿨다가 발각돼 파직됐다. 그와 마주친 조조가 이런 사정을 알면서 물었다.

“이보게, 자네 관인(官印)은 어디로 갔나?”

정배도 히죽거리며 답했다. “가져다가 떡 바꿔 먹었습니다.”

조조는 한바탕 크게 웃은 뒤 수행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개(조조의 모사)가 여러 차례 정배를 중벌로 다스리라고 했지만, 나는 정배가 쥐도 잘 잡고 물건도 곧잘 훔치는 고양이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놔두면 쓸모가 있을 것이다.”

도둑고양이도 괜찮다는 얘기다.

이런 ‘고양이론’은 ‘흑묘백묘론’으로 이어진다. 흑묘백묘론은 ‘흑묘백묘 조주노서 취시호묘’(黑猫白猫 抓住老鼠 就是好猫)를 줄인 말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란 뜻이다. 중국 쓰촨성의 속담인 ‘흑묘황묘’에서 유래했는데,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이 1979년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와 주창하면서 유명해졌다. 여기선 이념이야 어떻든 인민을 잘살게 하면 제일이라는 뜻이 된다.

중국 경제성장의 구호였던 흑묘백묘론은 21세기 들어 질적 성장을 중시하는 ‘녹색 고양이론’의 도전을 받는다. 2004년 원자바오 총리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이제 환경과 질을 생각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후안강 칭화대 교수는 ‘흑묘백묘론’을 ‘녹색 고양이론’으로 대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색 고양이가 아니라면 쥐를 잘 잡는다 해도 좋은 고양이가 아니라는 말도 나왔다.


2007년 대통령 선거를 맞은 한국에선 이런저런 흠이 있더라도 일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고양이의 색깔이야 어떻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이젠 색깔을 따지자는 중국과는 좀 다른 분위기다.

여현호 논설위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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