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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땅이름] 수자리와 정지 / 허재영

등록 2007-12-05 18:49

땅이름
고려가요 <청산별곡>에 나오는 ‘에정지’는 양주동의 <여요전주> 이후로 경상 방언 ‘부억’을 뜻한다고 푼다. 부엌에 해당하는 ‘정지’가 있다고 해서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정지 가다가 드로라”를 ‘부엌에 가다가 듣는다’로 푸는 건 부자연스럽다.

땅이름에는 정자·군막 같은 인조물에서 비롯된 것들도 많다. 넓은 들이나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정자를 짓고 나그네들의 쉼터로 이용하거나 은둔의 근거지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정자가 있던 마을에는 으레 ‘정자골’이 생겨난다. ‘정’(亭)은 또한 역참·군막을 일컫기도 했으니 ‘수자리’와도 관련이 깊다. 신라 때 군사 제도인 ‘9정’ 역시 수자리와 관련을 맺는다. ‘수자리’의 수는 ‘지킬 수’[守]와 음이 같고, 이는 ‘술·숯’과 음이 유사하다. 따라서 ‘수자리’ 대신 ‘술골·숯골’이 생겨나며, 이런 땅이름은 ‘술 주’[酒], ‘숯 탄’[炭]을 가져다 ‘주곡·주동·탄곡·탄동’으로 바꾼다. 이쯤 되면 ‘수자리’의 본뜻은 사라지고 술이나 숯과 관련된 땅이름처럼 여겨진다.

‘에정지’는 ‘어정지’(於亭地)로 보는 게 타당할 듯싶다. 고시조에서 한자어 ‘어혈지다’를 ‘에혈지다’로 표기한 사례가 있듯, 어조사 ‘어’(於)를 ‘에’로 발음하는 것은 흔하며, ‘정지’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다. <청산별곡>은 ‘사슴탈을 쓴 배우가 장대에 올라 해금 켜는 것을 듣는 장면’을 그렸으므로, 굳이 부엌에 가다가 들었다기보다 ‘정지’에 가다가 들었다는 뜻으로 푸는 게 자연스럽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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