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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무엇을 위한 반란인가 / 박구용

등록 2007-12-11 18:45수정 2007-12-11 19:32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세상읽기
많은 사람들에게 이명박은 노무현의 복사판이다. 가난과 고난이 흔적을 남긴 얼굴, 성공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기 확신의 눈빛, 서민적이면서 논리적인 말투, 그래선지 두 사람은 소외된 사람들의 아픔을 이해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노무현 후원자들이 이명박을 지지하는 하나의 숨겨진 이유다. 두 사람이 이미지만 닮은 것은 아니다. 시장의 논리인 경제적 성공에 국가공동체의 규범인 사회정의를 희생시킨 정책도 비슷하기는 마찬가지다. 차이가 있다면 노무현은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명박은 같다는 점이다.

양극화를 심화시킨 정치를 하면서도 말로는 약자 편을 드는 노무현의 이중성을 눈치채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시민들은 그동안 선거를 통해 끝없이 경고를 보냈지만 그 속에는 언제나 비판과 기대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귀를 막은 노무현은 끝내 시민들의 믿음을 저버린다. 대통령의 탄핵을 탄핵한 촛불시위대의 기대까지 배반한 것이다.

믿음의 깊이는 그것이 깨어질 때 내는 소리에 비례한다. 믿음의 파탄에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대응 방식이 있다. 연인에게 배반당한 사람을 생각해 보자. 첫번째 반응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때 새 연인은 새롭게 보이지만 옛사람과 비슷한 경우가 많다. 반복 속에 새로움이 사랑이라면 삶은 그만큼 비극인 셈이다. 둘째, 더 이상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사람 대신 동물이나 신을 사랑하거나, 요즘처럼 불확실성의 시대에도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돈벌이에 몸을 던지는 것이다. 사랑은 돈벌이가 아니라지만 돈으로 사랑을 교환하는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마지막 반응은 삶을 포함한 모든 가치를 부정하고 심지어 자기조차 증오하는 것이다. 이 경우 처음에 배신자를 향했던 폭력은 결국 자기를 파괴한다.

배반에 대한 반응들은 뚜렷하게 구별되기보다 뒤섞여 있다. 반복적 배신에 무기력해진 시민들은 노무현과 다르지만 비슷해 보이는 이명박에 다시 기대를 걸거나, 이명박은 싫지만 그를 통해 돈의 품에 안겨볼 계산을 하거나, 혹은 노무현이 상징했던 민주주의를 통째로 부정하고 파괴하는 반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노무현을 심판하기보다 오히려 대한민국 전체를 위험 사회로 몰아갈 가능성이 높다. 파괴는 결코 사랑이나 믿음을 재건하지 못한다. 믿음을 저버린 연인과 정치인에 대한 진정한 반란은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이명박 지지는 노무현의 배반에 대한 복수일 뿐 극복이 아니다. 노무현은 밤에는 비록 불량 운전자였지만 낮에는 준법 운전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밤이나 낮이나 일관된 불법 운전자다. 밤(현실)과 낮(이상)을 다르게 생각하는 노무현의 이중성보다 밤의 논리로 낮조차 어둡게 만드는 이명박의 일관성이 더 위험하다. 노무현의 이중성을 극복하려면 밤에도 낮처럼 운전하는 사람을 선택해야 한다.

이명박이 부패했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으나 배신감을 느끼는 이는 적다. 처음부터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에 대한 믿음은 경제적 성공이지 사회정의가 아니다. 그의 선거전략인 경제 프레임에 사회정의 프레임으로 맞서야 하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반란의 깃발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한참 동안 의견과 의지가 만나는 시민들의 공동 욕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실현되어서가 아니다. 민주화의 첫번째 수혜자가 자본가 집단이고 그 다음이 자본에 권력을 내어준 민주화 세력이라면, 시민과 민중은 가장 큰 피해자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들에겐 경제 민주주의라는 표현조차 배신자의 말처럼 들린다.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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