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뒤 첫 기자회견에서 “무엇보다 먼저 기초질서와 법질서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다. 심란해진다. 이제까지 그의 행적으로 볼 때, 어떤 질서를 말하는 건지 궁금하다. 곧 출범할 ‘이명박 특검’의 수사 결과와 관계 없이, 그는 당선되는 순간부터 역사의 법정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기초질서·법질서와 관련한 그의 혐의를 살펴보자.
① “이제는 위장전입과 탈세를 마음대로 해도 되겠네.”
요즘 연말 모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대통령 당선자가 ‘모범’을 보였으니 위장전입과 탈세는 부도덕한 행태도 죄도 아니게 됐다.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면 부드러운 얼굴로 사과하면 그만이다. 이전 정권에서 비슷한 일로 정부 요직에서 물러났던 사람들만 억울하다. 이 당선자는 우리 사회가 이런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사회적 윤리기준 자체를 무력화했다. 시민사회의 후퇴다.
② “그때그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거짓말을 해도 좋다. 나중에 다 수습할 수 있다.”
이명박 당선자는 2000년 10월 ‘내가 2000년 1월 비비케이를 설립했다’고 했다. 이 동영상이 공개되자 그는 “신금융산업을 소개·홍보하면서 약간 부풀려진 것일 뿐”이라고 강변했다. 자신과 비비케이가 아무 관계가 없다는 이전 주장에 잘못이 없다는 얘기다. ‘내가 비비케이를 설립했으나 나와는 관계 없는 회사’라는 난해한 어법이다. ‘A=A’라는 동일률은 모든 논리의 근본이다. 동일률이 부인되면 세상의 모든 말을 믿을 수 없게 된다. ‘남아일언 중천금’을 금과옥조로 삼아온 우리 선조들까지 부끄러워진다.
③ “돈이 최고다.”
이 당선자가 내세우는 최대 무기는 돈 버는 능력이다. 자신은 맨 손으로 성공한 사람이며, 국민들도 돈을 벌게 해주겠다고 공언한다. 국민에게 돈 버는 꿈을 갖게 해줄 수 있으면 어떤 결점도 덮을 수 있음을 그는 보여줬다. 기업가 출신다운 물질주의·배금주의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를 외쳐온 사람들마저 뜨끔할 정도다. 사회정의를 우선해야 할 정부 수반의 책무와도 상충된다.
우리 역사는 귀족의 나라, 사대부의 나라를 거쳐 시민의 나라로 발전해 왔다. 첫 통일국가인 신라는 소수 세습귀족이 다스리던 나라였다. 뒤를 이은 고려는 그 모순을 극복하고 사대부의 나라로 이행하려 했다. 광종·현종 때의 과거제도는 그 제도적 기반이다. 하지만 사대부는 나라를 떠맡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이런 전환기엔 무력을 가진 자가 득세한다. 60여년의 무신정권이 이어졌다. 사대부의 나라는 결국 조선에서 틀을 갖췄다. 한동안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특권적 사대부(훈구파)가 정국을 주도하다가 사림파의 시대가 왔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해방 이후 시민의 나라, 곧 대한민국이 들어섰지만 시민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 다시 등장했다. 30년 가까운 군사정권이 역사를 유린했다. 민주주의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시행 이후 차근차근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의 힘은 아직도 약하다. 기득권 세력이 곳곳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을 옹호하는 ‘특권적 시민’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이명박 당선자는 특권적 시민이다. 그는 기본적인 사회윤리조차 무시하고 말의 가치를 떨어뜨렸으며 물질주의를 공공연하게 조장한다. 그러면서도 선거에서 이겼다. 특권적 시민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이제 질서를 말한다. 나라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 하는 듯하다. 법은 실증적인 잘못만을 따지지만 역사는 사람 전체를 저울대에 올린다. 이 당선자는 역사의 법정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역사는 되풀이된다. 해방 이후 시민의 나라, 곧 대한민국이 들어섰지만 시민은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무력을 가진 자들이 다시 등장했다. 30년 가까운 군사정권이 역사를 유린했다. 민주주의는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시행 이후 차근차근 진전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의 힘은 아직도 약하다. 기득권 세력이 곳곳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을 옹호하는 ‘특권적 시민’의 목소리가 너무 크다. 이명박 당선자는 특권적 시민이다. 그는 기본적인 사회윤리조차 무시하고 말의 가치를 떨어뜨렸으며 물질주의를 공공연하게 조장한다. 그러면서도 선거에서 이겼다. 특권적 시민이기에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는 이제 질서를 말한다. 나라를 자신의 기준에 맞추려 하는 듯하다. 법은 실증적인 잘못만을 따지지만 역사는 사람 전체를 저울대에 올린다. 이 당선자는 역사의 법정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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