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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신년시] 새해, 너를 맞는다 / 고은

등록 2007-12-31 20:26

고 은
고 은
가야 할 처음이 왔다 새해가 왔다

인내의 끝

예감의 시작으로

묵은 한라에 올라 너를 맞는다

숭고하거라

온 비겁

온 천박 토해버리고

단한번 숭고하거라


이 한반도 어디로 가느냐

목 없는 형천(刑天)에게

다 맡겨버리겠느냐

다 파헤쳐지겠느냐

다 꿀꺽 삼켜지고 말겠느냐

‘10·4 남북 정상선언’에 따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설치될 인천시 옹진군 연평 앞바다의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어민들은 군사적 충돌이 잦았던 이곳이 화해와 협력으로 풍어를 엮는 바다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출어의 닻을 힘차게 올렸다. 연평도/이종근 기자 <A href="mailto:root2@hani.co.kr">root2@hani.co.kr</A>
‘10·4 남북 정상선언’에 따라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설치될 인천시 옹진군 연평 앞바다의 수평선 위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어민들은 군사적 충돌이 잦았던 이곳이 화해와 협력으로 풍어를 엮는 바다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면서 출어의 닻을 힘차게 올렸다. 연평도/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아니다 그간 쓰레기 널린 거리를 왔다

홑옷으로 우는 골목을 왔다

포효하는 열길 벼랑 파도 끝자락으로

저 죽어가는 개펄 달빛 쓰라린 신음으로 왔다

아니다

갈라져 주린 오장육부로 왔다

새해

너를 맞는다

흉금의 안쪽

지리 노고단 올라 너를 맞는다

장엄하거라

온 배척과 인색 내던지고 장엄하거라

그간 무엇을 하였더냐

무엇으로

숨찬 세상 한 모퉁이 여기를

마른 풀밭으로 남겼더냐

그런 것을 묻지 않거늘

이로부터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이리 내달려온 꿈 뚜렷이 있을진대

무엇으로 살겠느냐

컹컹 짖어 못 박아 묻는

새해 처음이 왔다

보라 막 솟아올라

뚝뚝 물 떧는 햇덩이 앞

내가 맨몸으로 멈춰서서

부르르 부르르 떨며

너를 맞는다

말 다음

뜻 다음으로

설악 소청에서 중청에서 대청에서

너를 맞는다

제발 덕분

지지리 못난 패거리 우둔 물리쳐 수려하거라

지금 설악 동쪽 푸른 바다

지금 저 서편 바다

고군산 밑 칠산바다 다 썩는다

오대 적멸보궁

치악 황장목

계룡 골짝

감악 안개 다 한 맺혀 천둥 밴다

이와 함께 한반도 각처의 넋들 망한다

밤 붉은 네온

붉은 십자

대낮 미친 형광 광고 아래

어느 넋도 얼도 기괴하지 않을 수 없다

온전할 수 없다

멍멍 멍들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새해가 왔다

너를 맞는다

삼가 만년 장래에 피어날 백발 같은 존엄으로

백두 장군봉 올라 너를 맞는다

극히 신령하거라

지금 신령치 못하다면

언제까지나

너 노비이리라

너 거지이리라

너 도적이리라

너 고자 노릇 속여대리라

눈알 빠진 해골 웃음이더냐

그 허망한 히히 웃음이더냐

너의 말 그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으리라

새해가 왔다

이 한반도의 남과 북

오래 지친 꿈 속여서 너를 맞는다

확연한 바

다 내놓아야

어깨 겯고 찾아오리라

다 버려야

무릎 펴 채워지리니

새해가 왔다 새해가 와 너를 맞는다

온 누리 일곱 빛깔 활짝 펴

한 해 벽두 입 다물고

너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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