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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셰르파 / 곽병찬

등록 2008-01-14 18:46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유레카
1934년 독일 원정대는 악조건 속에서 낭가파르바트를 오르다가 악천후를 만나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했다. 대장은 몸이 성한 대원 1명과 함께 남은 식량과 장비를 챙겨 스키로 도주했다. 남겨진 셰르파 9명은 훗날 만년설 속 주검으로 발견됐다. 히말라야의 눈속에 셰르파들을 파묻고 내려온 유럽의 다른 원정대 대장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셰르파만 죽고, 우리는 무사했다.”

셰르파는 일당 1루피(25원)를 받고, 15㎏의 듬짐을 지고 히말라야 8000m의 고지대를 오르내린다.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고용되면, 원정대는 한 번만 오르는 사우스 콜(해발 8600m)까지 무려 여덟 번을 왕복해야 한다. 마지막 목숨을 건 정상 정복에도 길잡이 혹은 짐꾼으로 동행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은 이는 1200여명. 이 가운데 3분의 1이 셰르파였다. 그러나 세상은 이들을 일당 몇 푼짜리 짐꾼으로나 기억한다.

셰르파는 원래 18세기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 동북쪽에 정주한 종족(‘히말라야 동쪽 사람’)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였다. 이들은 히말라야에 대한 사랑과 지식, 체력과 기량, 헌신성으로 돈 많은 유럽 원정대의 조력자가 되었다. 원정이 잦아지면서 셰르파는 히말라야 등정의 도우미를 뜻하는 일반명사로 굳어졌다. 이들이 히말라야에 오르는 이유는 오로지 하나, 자식들이 인간 이하 취급을 받으며 히말라야에 오르지 않아도 살 수 있도록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아버지처럼 존경하는 유럽 산악인이 있다. 에베레스트 첫 등정자인 에드먼드 힐러리다. 이들에게 힐러리는 겸손과 관대함의 상징이다. 초등 사진 속엔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만 있다. 힐러리가 영광을 양보한 것이다. 힐러리가 3m쯤 앞서 밟았다는 사실은 텐징 사후 13년 뒤에나 세상에 알려졌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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