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보수는 지난 10년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민주·개혁·진보 쪽은 되찾은 10년이라 했다. 그러나 다수의 민중은 ‘잃어버렸다’는 데 동의하였다. 대선 결과를 반드시 그렇게 해석해야만 하느냐고 억울해하는 눈망울을 굴릴 이들이 있을지라도 또다른 아전인수의 해석은 개혁진보 쪽을 더욱 오만하게 할 뿐이다.
냉정히 인류사를 되새겨 보면, 진보집단이 추구하는 가치인 사회정의·민주·연대·평등·인권 … 이런 것들은 그 오랜 역사에서 아름답게 빛을 낸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 소수의 가치였고 피지배층의 가치였던 적이 많았다. 현실의 부조리와 부정의, 거대한 기득권층의 탐욕적인 질서, 다수의 힘으로 자행되는 반인권적 폭력 문화 … 이런 것들이 판치는 사회에서 대다수 민중이 그것을 느끼지 못하거나 그것을 깨닫고 절망에 휩싸여 있을 때, 선명한 한줄기 희망의 빛 또는 비상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진보의 가치들이었다.
따라서 진보는 현실의 가치라기보다는 이상의 가치였다. 통치자의 가치라기보다는 감시자의 가치였고, 다수의 가치라기보다는 소수의 가치였다. 그리하여 진보는 불의와 반민주, 거짓이 금도를 넘어 마침내 폭발하려 할 때 극적인 반전의 감동으로 현실에 강림하였던 적이 많았다. 10년 전, 5년 전의 정권교체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한국의 ‘진보’는 반독재, 민주화의 이미지와 혼재되어 왔다. 오랫동안 독재와 반공이데올로기 속에서 정치적 민주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있었던 탓에, 내심 그가 신자유주의자든 시장주의자든 반독재 민주투사의 훈장을 달기만 하면 개혁, 나아가 진보세력으로 등치되는 모호한 정체성이 계속되었다. 그 결과 국민들도 또한 그들 자신도 민주·개혁·진보 세력이 하나인 줄 알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의 실정도 민주·개혁·진보 세력 모두의 실패로 덧칠되고 말았던 것이다.
이젠 민주화의 담론이 끝난 지 이미 오래고, 바야흐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아래서 민중들의 삶과 생활이 양극화와 시장화의 악령 속에서 어떻게 지켜질 것인가 하는 생존위기 시대로 접어든 지 오래다. 그러나 정체성이 모호한 과거 10년의 주도세력은 이에 대해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실행력이 담보된 정책대안을 갖추는 데 실패했다. 이것이 민중들에 의해 지난 10년이 잃어버린 세월이라는 데 동의하게 만든 근본원인이다.
따라서 한국의 진보는 그동안 ‘정치적 민주화’ 담론으로 버텨온 세월에 대해 진정 반성해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이념적 분화기를 거쳐야 한다. 과거 10년의 주도세력은 진정한 진보인가 아닌가의 기준으로 분화되거나 거듭나야 한다. 그리하여 민중들의 생활과 삶의 현장에서 정의가 느껴지고 연대와 평등이 숨쉬게 하는 세심한 정책대안을 갖춘 강건한 진보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바로 거기에 복지가 있다. 복지는 이제 복지계, 복지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다. 모든 진보세력이 공유하고 전파해야 하는 진보적 가치의 핵심이자 정책 대안의 중추다.
복지의 가치를 내세운 영국의 노동당도 1900년 창당하여 자신의 힘으로 독립내각을 구성한 것은 45년이나 지나서였다. 분명한 진보적 이념과 노선, 정책대안을 자산으로 한 정당이 꾸려진 역사조차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에게 초조해야 할 이유가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역사적 사실이다.
진보는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소수의 가치로만 머물지 않는, 아니 더는 극적 반전을 통해서만 등장하는 세력이 되지 않는 길을 찾아서.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진보는 이제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다. 소수의 가치로만 머물지 않는, 아니 더는 극적 반전을 통해서만 등장하는 세력이 되지 않는 길을 찾아서.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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