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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신자유주의 포퓰리즘 / 김지석

등록 2008-01-14 19:54

김지석/논설위원
김지석/논설위원
아침햇발
선거가 끝나면 연극이 새로워진다. 세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 무대는 그대로 두고 출연자만 바꾼다. 집권당이 이겼을 때다. 둘째, 무대를 고쳐 새 작품을 올린다. 집권당과 야당 가운데 어느쪽이 이겨도 가능하다. 셋째, 기존 무대를 뜯어내고 새 무대를 설치한다. 출연자는 물론이고 관객들도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이제까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보면 셋째에 가깝다. 인수위는 정부 부처들의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참여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부정하도록 유도했다. 과거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클린턴 뒤집기’로 자신의 정체성을 세우려 했듯이, 이 당선인과 인수위는 ‘노무현 뒤집기’로 존재를 과시하려 한다.

하지만 과거의 부정이 이명박 정부의 앞날이 될 수는 없다. 따져보면 새 정부가 차별성만 추구해서는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우선 외교·안보·통일 분야가 그렇다. 한-미 외교 갈등은 미국이 대북 협상 노선을 분명히하기 전의 일이다. 이제 와서 미국 강경파와 손잡지 않는 이상 참여정부의 대북 정책과 단절할 수는 없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두고 재협상을 거론하는 것은 미국으로서도 부담스런 종미(從美) 행태일 뿐이다. 한반도 관련 사안에서 한국의 입지를 키우려면 기존 정책의 성과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경제 분야도 쉽지 않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올해 2% 미만의 성장을 예상하는 상황에서 이 당선인의 공약인 6~7% 성장은 비현실적이다. 대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은 그러잖아도 심각한 양극화를 걷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심화시킬 것이다. 경제전문가인 이 당선인이 이를 모를 리 없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성장률 목표치를 합리적 수준으로 낮추고 안정적으로 경제를 운용하는 것이다.

차별성 측면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정책이 둘 있다. 교육과 한반도 대운하가 그것이다. 하지만 교육 문제는 어떤 방법을 쓰더라고 단기간에 성과가 나지 않는다. 시장 지향의 교육개혁은 새 모순을 낳고, 다음 정부는 다시 개혁에 나설 것이다. 반면 대운하는 청계천 복원이 그랬듯이 그의 임기 동안 국민의 눈을 잡아둘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물론 두고두고 새 정부의 약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사실 이 당선자와 노무현 대통령은 비슷한 점이 적잖다. 이 당선자는 실용주의자를 자처하고 있고, 노무현 대통령도 스타일과 화법을 제외하면 실용주의자 범주에 든다. 이념적으로 이 당선자는 중도우파에 속하며 노 대통령도 대체로 중도정치를 펴 왔다. 노 대통령은 적어도 임기 중반 이후에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고수했고, 이 당선자는 그 길을 활짝 넓히고 있다. 노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과의 연정을 얘기했을 때, 그는 이 당선인과 같은 정치세력을 염두에 뒀을 법하다.

그런데도 두 정권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보수세력이 스스로 만든 질곡 탓이 크다. 이들은 중도 성격의 노무현 정부를 좌파정권으로 규정했다. 그래서 많은 정책에서 단절을 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러다 보니 정책 선택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앞으로 이 당선인이 수구노선으로 이동하지 않고 ‘화합적 자유주의’를 고수한다면, 대운하와 같은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정책으로 이전 정권과의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는 구도다. 이전 정권이 망설이면서 닦아놓은 신자유주의의 길을 넓혀 포퓰리즘을 입히는 것, 곧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은 바로 신자유주의 포퓰리즘이다. 이는 지난해 5월 취임한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택한 길이기도 하다. 당시 높은 지지율을 과시했던 사르코지는 이제 현실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다.

김지석/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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