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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다니엘 바렌보임 / 함석진

등록 2008-01-31 20:12수정 2008-01-31 21:12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유레카
요즘 엘가의 첼로협주곡을 자주 듣는다. 대학 때 친구가 선물한 시디는 표면에 상처가 많이 생겼지만 버리지 못했다. 첼리스트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음악만큼 누군가를 사랑했고, 그 사랑에게 버림받은 재클린 듀프레. 언젠가 연주회에서 손가락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지휘자인 남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고 연주를 마쳤다. 남편은 “나태해졌다”며 듀프레를 더욱 몰아세웠다. 훌륭한 음악가는 혹독한 반복 훈련 뒤 맺히는 ‘기교의 열매’라고 남편은 믿었다. 듀프레는 결국 온몸의 신경이 죽어가는 불치병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고 쓰러졌다. 진단을 받은 날에도 듀프레는 친구에게 “그 사람에게 내 정신력이 약한 탓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어서 다행이야”라고 말했다. 음악이 전부였던 남편은 곧 듀프레와 이혼했고, 듀프레는 그 뒤 14년을 병상에 누워 있다가 외롭게 눈을 감았다. 20년 전 일이다.

엘가 <첼로협주곡> 1악장. 첼로 : 재클린 듀프레, 지휘 : 다니엘 바렌보임

그 남편은 뜻대로 출세를 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이다. 유대인인 그는 얼마 전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인 요르단강 서안에서 자선 연주회를 열고, 유대인 최초로 팔레스타인 명예시민증까지 받았다. 유엔은 그를 유엔 평화특사로 임명하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단 총감독이기도 한 그가 요즘 가장 정성을 쏟는 대상은 음악유치원이다. 이 유치원에서는 음악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은 여기저기 놓여 있는 악기를 가지고 놀고 음악을 듣는 게 전부다. 배신한 사랑에 대한 참회일까? ‘음악 조련사’라는 조롱까지 받았던 그는 이제 “천재 음악가 10명보다 음악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따뜻한 시민 한 명의 감성이 더 위대하다”고 말한다.


폐허가 된 한국 교육현장에서 인성교육의 회복은 영어 경쟁력보다 천만 배는 더 시급한 일이다. 불행하게도 차기 정부는 이 ‘한가한’ 소리를 인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함석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sj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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