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참여정부 5년이 드디어 종언을 고한다. ‘국민 성공시대’를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는 당선의 명분이기도 하였지만 혹심하리만큼 참여정부 ‘지우기’에 열중할 것이 예상된다. 새 정부의 출범을 준비한다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짤막한 한달 반에 걸친 활동 기간에도 이러한 지우기 작업은 거세게 진행되었다.
신성한 국민으로부터 국정운영의 책임을 부여받았으므로 5년간 소신껏 일하고 평가받겠다는 데야 딴죽을 걸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지난 정부의 궤적을 무조건 지우거나 뒤집는 것이 능사일 수는 없다. 과연 이전 정부가 추진해 왔던 정책의 맥은 무엇이었으며, 그것의 의도와 성과는 무엇이었는지 아주 냉정한 평가를 거치지 않는다면 불연속적인 단절의 정책에서 오는 혼란이나 아무런 축적 역사 없이 그저 새롭기만 한 정책 시도에서 오는 피로감은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복지정책, 더 넓은 의미의 사회정책 분야가 바로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참여정부가 시대정신에 충실히 부응하려 했던 가장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복지정책을 적극적으로 폈다는 점이다. 보수진영의 인사들은 ‘퍼주기 복지’로 재정이 방만하게 운영되며 성장 동력을 상실했고 복지병 남발이 성행한다고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 증거로 참여정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요직에 중용되었던 한덕수 총리와 같은 경제관료들, 그리고 유시민 전 장관처럼 개혁세력을 자처했지만 실제로는 자유주의자였던 이들에 의해 복지정책 내에 시장과 효율성이라는 자기검열의 장치가 내장된 점을 들 수 있다. 의료와 보육, 교육의 산업화 논리, ‘바우처’라는 서비스 구매권을 이용한 민간 영리부문의 참여 유도, 가난한 이들의 병원출입에 빗장을 채운 의료급여제, 지나칠 정도로 소극적으로 일관한 빈곤계층을 위한 근로소득 공제제도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렇지만 총론적으로 보았을 때 참여정부가 그간 기형적으로 경시되어온 복지분야를 의도적으로 키우려 했던 것은 지극히 온당하다. 복지와 경제가 양립 가능하다는 동반성장의 담론을 제기한 점, 복지재정과 경제 개발재정의 총예산상 비중을 역전시킨 점, 예산처의 기능에 사회투자적 관점을 이식시킨 점, 양극화·저출산·고령화에 대한 중장기적 계획수립을 독려한 점, 지방정부의 조직체계까지 개발 정부에서 서비스 정부로의 변환을 추동하도록 혁신적으로 바꾸어버린 점, 교육복지·문화복지·주거복지 등의 개념을 통해 사회통합적 관점을 실현시킨 점 등은 ‘참여정부 뒤집기’ 정책으로 버려지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정책이다.
참여정부 스스로 제기한 담론이지만 참여정부가 무너지는 데 일조했던 그 ‘양극화’ 경향도 단언키는 어렵지만 참여정부 말년에 와서는 둔화되는 조짐을 보인다. 곧 소득의 불균등도 개선효과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고 지니계수도 2006년도에는 떨어졌다. 출산율도 2006년과 2007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아직 인수위의 활동 결과가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명박 정부의 사회정책 기조가 어떨지를 분명히 판단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연금개혁 외에는 그 어떤 대담한 복지정책 이슈가 착안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당선인 스스로 “경제가 중요하지 복지는 당분간 없다”고 언급했다는 흉흉한 이야기만이 떠돌 뿐이다.
무한경쟁과 영리주의에 피폐해진 우리네 삶을 지탱해주는 장치가 이제야 조금 숙성해지려는 찰나 그 기반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린다면, 우린 다시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악령이 뒤끓는 ‘정글’ 앞에 외롭게 서게 된다. 이것이 2007년 이명박씨를 선택한 한국사회의 최대 비극이 될 것이라면 너무 지나친 저주일까? 두려운 미래 앞에서 진보의 책무가 새삼 어깨를 무겁게 짓누른다.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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