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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행복한 진보를 위하여 / 박구용

등록 2008-02-12 19:26수정 2008-02-12 20:49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세상읽기
박정희는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의 정치는 10년 만에 성장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유신정권이 지향했던 한국식 자유민주주의는 이명박 정부를 통해 ‘화합적 자유주의’로 새롭게 단장했으며, 군사독재는 ‘창조적 실용주의’라는 시장독재로 발전하고, 새마을 운동은 대운하 사업으로 확장될 전망이다. 박정희 정권이 국민의 타율적 복종에 만족했다면 새 정권은 자율적 복종으로 다져지고 있다. 우파 정권이 수구에서 보수로 진화한 것이다.

우파가 이처럼 자기 변신을 꾀하는 동안 좌파는 왜 유신시절보다 더 절망적인 수렁에 빠지고 말았는가? 답은 어쩌면 단순한 곳에 있다. 우파가 좌파보다 진보했기 때문이다. 사실 ‘좌파=진보’라는 등식은 얼치기 좌파들의 통속적 믿음이다. 진보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적·문화적 진보도 있지만 기술적·경제적 진보도 있다. 좌파적 진보가 전자를 강조한다면, 우파적 진보는 후자에 몰두한다. 따라서 시장경제의 성장과 과학기술의 발달을 진보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진보는 좌파의 이념이라기보다 우파의 전유물이 된다.

우파가 시장과 과학의 발전을 보수 정치의 성장 동력으로 이용할 때, 좌파는 정의와 연대, 그리고 소통의 확대를 진보 정치의 자양분으로 삼아야 한다. 진보란 본래 스스로 진보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피곤한 것이다. 앞에서 이끄는 사람에게는 행복이지만, 뒤따라가는 사람에게는 멈춤보다 불행한 것이 진보다. 따라서 좌파가 지향해야 할 행복한 진보는 특정 이데올로기를 도덕적으로 강요함으로써 시민을 피로하게 만드는 신념의 정치가 아니라, 시민과 민중이 정의와 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소통, 곧 인정 투쟁의 서로 주체가 되게 하는 책임의 정치를 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은 행복을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행복을 가늠할 수 있는 단일한 기준은 없다. 그래도 행복의 최소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일 것이다. 일상적이고 직업적인 업무에서 자부심을 찾지 못하면 곧바로 자기를 잃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행복의 최소조건인 자부심조차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 일을 통해서 벌어들인 소득의 양으로 환산하도록 강요한다. 이러한 논리에 다수의 대중이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선거결과가 반복되는 것은 지난 10년 동안 좌파 정치가 우파적 진보의 논리에 투항했기 때문이다.

한국엔 진정한 좌파가 없다고 말하지만 좌·우는 어디에나 있다. 이념의 모양만으로 좌·우를 구별하는 것은 ‘맥락’(context)을 무시한 ‘문자’(text) 해석이다. 한국적 맥락에서 볼 때 통합민주당과 민노당은 좌파 정당이다. 문제는 다수의 좌파 정당이 권력을 잡고 소수의 좌파 정당이 의회에 진출한 10년 동안 진보 정치가 피로와 불행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이다. 노동이 아닌 부동산과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 소수의 전문 직업인과 기업인들,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 즉 기술과 시장의 진보에서 주체가 된 사람들을 제외한 모든 시민들이 좌파 정치로부터 행복보다 불행을 느껴야만 하는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은 어쩌면 한동안 오른쪽 날개로만 날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쪽 날개가 심한 상처를 입으면 머지않아 추락할 수밖에 없다. 추락하는 것에도 날개는 있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지만, 시민과 민중을 진보의 주체로 내세우는 정당이 생기지 않는 한 좌우로 날갯짓을 할 수 있는 봄날은 온지도 모르게 지나갈 것이다. 이 겨울, 그래도 희망은 각자의 일에서 행복을 찾는 좌파적 진보 정치에 있다. 진보의 적은 퇴보나 느림이 아닌 동일한 것의 반복과 무책임한 냉소다.

박구용/전남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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