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어느 나라가 첫손에 꼽는 국가적 보물을 통째로 태워버렸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그 나라는 세계 열두번째의 무역대국이고 연 6%의 경제성장을 호언하는 나라인데 국가적 보물 1호에는 달랑 소화기 8대만 놓고 방치했다면? 또한 그 국보를 관리하는 지방자치단체는 1년 예산 규모가 23조원이 넘는 국제적 도시인데도, 국보는 밤이 되면 경비원도 없이 노숙자의 안식처였다면? 문화재청장이 국보급 목재 문화재에서 음식을 조리하며 대규모 연회를 개최했다면? 소방 설비도 갖추지 않은 채 국보를 개방하면서 그 앞에서 하는 쇼에는 연간 17억원을 들이는 결정을 했던 지방자치단체장이 불이 나 타버리자 국민 모금을 앞장서 주장한다면? 당연 기본이 안 된 나라라고 혀를 끌끌 찰 것이다.
객관적으로 들으면 문화적 수준이 미개하다고 손가락질 받을, 기본이 안 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더욱 한심한 것은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큰 사건과 재난이 있을 때마다 관련 기관들은 변명과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땜질 처방과 국민 모금 이벤트로 호들갑을 떨다가 그대로 방치하는 어리석음이 계속되고 있다. 급기야 600년 역사의 국보 1호까지 태워먹은 마당이다. 이제는 이런 졸속과 안전 불감증의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에 의한 태안 기름오염 사고가 발생한 지 두 달이 넘었다. 10년이 지난 뒤에도 기름오염이 지속된다는 사실을 확인한 시프린스호 사고보다 훨씬 규모가 크니 앞으로 서해안의 넓은 지역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피해를 줄지 걱정된다. 1989년 미국 알래스카 엑손 발데즈호 기름오염 사고 두 달 후에 미국 교통국과 환경청은 합동보고서를 대통령에게 공개적으로 제출했다. ‘사전 예방이 최고의 관리대책’이라는 결론이다. 아울러 제시한 안전관리와 오염자 부담 원칙 강화, 보상체계 보완, 환경복구와 같은 구체적 정책들은 현재까지 진행형이며, 연차적 후속 보고서를 통해 그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고보다 6년 뒤에 일어난 여수 시프린스호 사고 때 우리는 제도적으로 기술적으로 무방비 상태여서 피해가 매우 컸다. 그 당시 높았던 질타와 자성의 목소리가 결국 지나가는 소리였다는 사실은 12년 뒤 삼성중공업이 태안에서 여실히 증명했다. 큰소리치던 정부의 방제능력이나 선박 관리능력뿐 아니라 ‘관리의 삼성’이라는 한국 대표기업의 안전관리 부재를 재확인시켰다. 하지만 자원봉사와 국민모금 이외에 어떤 재발방지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고 있는지 여태껏 확인된 바 없다.
걱정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에서 이런 겉치레와 안전 불감증이 더욱 고조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발표한 새 정부의 192개 국정과제를 살펴봐도 안전한 사회 구축 의지를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에 기존에 있던 법적 안전장치조차 무시하는 특별법을 만들면서까지 한반도 대운하는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굳이 김지하 시인의 표현을 빌리지 않더라도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것은, 국민의 1% 미만인 부동산 투기세력과 건설업자가 부추기는 정치인들을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한반도 대운하 같은 철저한 국토 파괴는 아무리 국민 모금을 하더라도 복원이 불가능한 일이다.
대표 문화재 하나 온전히 보전하지 못하면서 마구잡이로 일 벌이기 전에, 우선 숭례문이 시민에게 개방된 과정부터 노숙자들이 라면을 끓여 먹어도 되는 장소로 방치되다가 결국에는 화재로 소실된 시점까지를 차분히 돌아보자. 또다시 사후약방문을 쓰기에는 가슴의 구멍이 너무 크다.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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