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마을
탱자꽃이 폈다
벌떡 일어나 방의 배치를 달리하고 싶었다
농짝을 옮기니 양말 한 짝 나자빠져 있다
발이 묶여 오도 가도 못하고
농짝의 육중한 무게를 긴 시간 견디고 있다
다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깜깜한 농짝 귀퉁이에 축 늘어진 몸 걸치고
세월을 기다린 충직함에 목이 아리다
푸석푸석 붙어 있는 먼지 툴툴 털고 이젠 가야 한다
너무 오래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아무 일도 없는 듯 잊고 살았다
서슬 푸른 탱자나무가
안으로 안으로만 가시를 세우는 줄도 모르고
-시집 <쓰러지는 법을 배운다>(랜덤하우스)에서
최 명 란
1963년 경남 진주 출생. 세종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
200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2006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동시집 <하늘천 따지>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