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명섭 책·지성팀장
유레카
자살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다. 가장 자주 보도의 초점이 되는 것이 정치적 자살이다. 뜻은 있지만 힘이 없는 자가 마지막으로 기대는 것이 목숨이다. 정치적 상황이 너무나 암울해서 압도적인 무력감을 유발할 때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최후에 불러내는 것이 정치적 자살이다. 독재정권 시절의 수많은 분신·투신 자살이 그런 자살이었다. 정치적 자살의 극한은 테러로서의 자살이다.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 희생물로 바침으로써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는 테러형 자살은 적절한 수단을 결여한 의지가 만드는 극단의 살풍경이다.
훨씬 은밀하기는 하지만 단호하기로는 정치적 자살에 못지않은 자살, 철학적 자살도 있다. 도스토옙스키 소설 〈악령〉의 등장인물 키릴로프의 자살이 전형이다. “신이 없다면 인간은 자유다.” 자신이 자유의 주인임을 입증하는 절대적 방법으로 그는 자살을 선택한다. 고대 시칠리아의 철인 엠페도클레스는 키릴로프의 선조라 할 만하다. 그는 제자들과 저녁을 먹고 난 뒤 에트나 화산의 이글거리는 불길 속으로 몸을 던졌다는 전설을 남겼다. 그의 죽음은 후세의 상상력에 불을 지폈다.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라는 말을 만든 가스통 바슐라르는 그 전설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죽음 속으로 몸을 내던질 때, 엠페도클레스는 자유다.”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 자살이다. 거기에는 어떤 고귀함도 숭고함도 없다. 개인적 자살은 사적인 것 중에서도 사적인 것, 그것도 치부에 가깝다. 그러나 〈자살론〉을 쓴 에밀 뒤르켕은 개인적 자살을 사회적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살은 사회의 급격한 변동기에 증가한다. 자살은 사회적 현상이다. 얼마 전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성이 또 자살했다. 뒤르켕이라면 그 죽음을 우리 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사회적 숙제로 봐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고명섭 책·지성팀장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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