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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폴리페서, 그 무책임한 이름 / 김상종

등록 2008-03-10 20:07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타워팰리스나 삼성동 아이파크를 대한민국의 1% 안에 드는 부자들이 가족들의 안식처로 선택하며 바라는 것은 쾌적함과 가족의 건강일 것이다. 그들에게 건강에 좋다는 고가의 친환경 내장재는 필수 옵션일 거다. 그러나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콘크리트는 아무리 부자라도 쉽게 바꿀 수 없다. 이 콘크리트가 발암물질을 포함하는 각종 유해물질 덩어리일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1999년부터 석탄재, 철강슬래그, 오니류 등의 유해 산업쓰레기를 시멘트의 원료로 사용해 왔다. 철강슬래그에 고농도로 함유된 6가크롬은 아토피성 피부질환이나 천식·기관지염에서 폐암·위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인체를 위협하는 발병 물질이다. 이미 미국에서 집단적으로 암에 걸린 사례가 보고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 회사에서만도 연간 무려 6만 톤이나 일본에서 수입해 시멘트를 제조했다고 한다. 이뿐 아니다. 시멘트 원료물질 이외에도 보조연료 명분으로 폐유, 폐합성수지, 폐타이어를 2006년 한 해에 무려 71만 톤이나 넘게 들여왔다.

외국 공장들의 골칫거리인 유해 산업쓰레기를 우리나라 회사들은 수입해 시멘트를 만들고 그 발암물질 덩어리 시멘트로는 가족의 안식처인 아파트와 주택, 학교와 병원과 직장 건물을 지어 온 것이다. 결국 건물마다 뒤발린 시멘트의 유해성은 남녀노소와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 이렇듯 ‘국내 자원 재활용’이라는 명분은 국민건강을 볼모로 한 것이었다. 예견했든 못 했든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유해 산업쓰레기 처리장으로 전락하는 부수효과까지 낳았다.

유독한 산업쓰레기가 아프리카나 중국, 남미의 오지에 불법적으로 폐기처분된다는 풍문이 돌 때마다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의 미개함을 한탄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와 기업인의 협력에 의해 은밀하게 이뤄진다지만 우리는 스스로 정한 법에 의해 ‘합법적으로’ 행했다. 더욱이 시멘트의 유해성에 대해 환경부는 계속 부인해 오다가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자 비로소 민·관 합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웰빙 바람이 드높아만 가는 시대에 어떻게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는지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시멘트에 산업폐기물을 섞어 쓸 수 있도록 허용한 폐기물관리법 개정 당시 환경부 장관은 화학과 교수 출신의 김명자 장관이었다. 화학자가 중금속의 유해성을 몰라서 유독성 산업쓰레기를 외국에서 수입하면서까지 시멘트 원료로 허용했을 리는 없다고 본다. 허가 배경에 자연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환경단체 대표 경력을 갖고 김대중 정부의 최장수 장관으로 국가 환경정책을 총괄한 그는 서울대 초빙교수로 잠시 복교했다가 다시 국회에 비례대표로 진출했다. 이상하게도 환경 전문가의 경륜은 도외시한 채 의정활동은 국방위원으로 일관했다. 정치권의 교수 발탁 목적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새 정부의 청와대와 국무회의에 많은 교수들이 참여했고 18대 국회에도 지역구나 비례대표로 많은 교수가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수혈될 것이다. 교수들은 정치권에 들어간 뒤 평소의 학문적 주장과 소신을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재벌이나 부동산 투기꾼이나 토건족 등 특정 집단의 앞잡이 노릇을 당당하게 해내거나 비겁하게 방조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이제까지는 이들을 권력과 돈의 노예가 된 사람으로 치부하며 불쌍하게 여기고 넘어갔다. 그러나 유해 시멘트 사례에서 보듯 이들이 개인적인 욕망을 채우는 동안 국민들이 받은 피해가 너무 큰 만큼 이제는 철저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 ‘폴리페서’들에게 책임을 묻는 방법 마련은 전문가이면서도 그들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한 책임이 있는 교수들의 몫이다. 우선 그들이 쉽게 대학으로 돌아오는 제도부터 바꿀 일이다.

김상종/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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