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북녘말] 교복물림 / 김태훈

등록 2008-03-16 17:57

북녘말
“벼수확의 10 이상이 교복물림처녀의 가느다란 팔에 실리였다.”(한웅빈·금수강산을 수놓는 처녀)

요즘 남녘에서는 선배가 후배에게 교복을 물려주는 일이 활발하다는데, 북녘에서도 그런 일이 많은 것일까? 그런데 ‘교복물림처녀’를 ‘교복을 물려받은 처녀’로 보면, 문장이 잘 해석되지 않는다. 농사를 짓는 일과 교복을 물려받는 일이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북녘 말 ‘교복물림’은 ‘학교를 갓 졸업하여 사회 경험이 부족한 사람’을 홀하게 이르는 말이다. 남북에서 쓰는 ‘책상물림, 글방물림’과 같은 말이다.

‘물림’은 ‘밥상을 물리다, 책상을 물리다’처럼 ‘무엇을 다른 곳으로 옮기다’를 뜻하는 ‘물리다’의 명사형이다. ‘책상물림’은 공부하는 책상을 물렸으니 금방 공부를 마쳤다는 뜻이고, 이는 곧 실제 경험이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글방은 옮길 수 없기 때문에 ‘물림’의 대상이 될 수 없으나, ‘책상물림’의 영향으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글방을 금방 나왔다면 역시 경험이 부족할 것이다. 북녘에서는 ‘교복물림, 학생물림’도 쓰는데, 교복을 금방 벗은 것, 학생을 금방 벗어난 것 역시 ‘경험이 부족하다’로 연결된다.

재미있는 것은 남녘의 ‘교복물림’이다. ‘물리다’는 ‘재산을 아들에게 물리다’처럼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 주다’의 뜻도 있는데, 남녘에서는 이 뜻으로 ‘교복물림’을 쓴다. 사실 ‘무엇을 옮기는 것’이나 ‘무엇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나 ‘대상물이 이동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그 미묘한 차이를 남과 북이 다르게 쓰고 있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