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사람이름] 두런·가라치 / 최범영

등록 2008-03-24 20:19

사람이름
태조 7년(1398년), 이방번의 종 박두언(朴豆彦)이 무리를 지어 난을 일으키려는데 김성부의 종 가라치(加羅赤)가 끼었다가 이숙번에게 일러바쳤다. 이로 박두언은 목이 달아났고 가라치는 상으로 옷가지와 쌀과 콩 열 섬씩 받았다.

豆彦과 豆乙彦(두을언)이 있는데 둘 다 ‘두런’을 적는다. 두런이란 이름은 사내이름으로 널리 쓰였다. 이와 비슷한 이름에 ‘두란’이 있다. 태조에게 가까운 벗이 있는데 북청에서 태어난 야인으로 ‘이지란’이다. 숨지며 태조에게 다른 나라에 와 죽은즉, 주검을 태워 도로 고향땅에 돌려보내 그곳 풍속을 따르게 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 이지란의 본디 이름은 ‘퉁 두란터물’이었다. 몽골말로 쌍둥이는 ‘두란’이라 적고 ‘두런’으로 소리 낸다. 표기와 표기된 내용의 이러한 모습은 중세의 사람이름에 두란과 두런이 함께 보이는 현상을 연상케 한다.

조선조에 정2품 이상 되는 벼슬아치는 중요한 공문서를 기름먹인 종이로 만든 곽에 넣고 다녔다. 이를 ‘가라치·거러치’라고 한다. ‘파일’이라는 외래어를 가라치로 바꿔 써도 좋을 듯하다. 가라치를 들고 다니는 사람(종) 또한 ‘가라치’라 불렀다. 종(隸/奴僕)은 훈몽자회에 거러치, 삼국유사에는 皆叱知(갯디)라고 했는데, 둘을 견줘 보면 같은 뜻이긴 하나 서로 이어대기 어렵다. 거지의 다른 말, ‘거러지’는 무슨 (밥)통을 들고 다니는 사람, 가라치/거러치의 비유가 얹혀 쓰이게 된 것일 수도 있다. 赤(붉을 적)은 ‘치’ 또는 ‘적’을 적으며 조선 후기까지 관습이 이어졌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