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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일제고사는 학부모 줄세우기 / 김정명신

등록 2008-03-24 20:34

김정명신/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김정명신/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시론
지난 3월 초, 전국에서 일제히 실시된 중1 학력 진단평가 결과가 공개됐다. 서울과 부산, 울산 등 7개 시도교육청은 개인 석차 백분률을 포함해 학교·지역 평균을 성적표에 공개해 지역별 학교별 서열이 매겨지고 학생 개인은 말할 것도 없고 교사간 학교간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기초학력 미달 제로플랜’에서 비롯된 이번 시험은 10여년 만에 부활한 전국 일제고사다. 세계화·정보화·다양화를 지향하는 7차 교육과정 도입으로 일제고사는 지난 1996년 이후 초등학교에서는 자취를 감췄고 그동안 중학교에서는 표집 평가를 통해 학습부진아 통계를 내왔다. 진단평가 의미는 지난번에 배운 것, 중학교 1학년의 경우 초등학교 6년 공부하는 것을 평가한 것이므로 입학 3일 만에 치른 이번 시험결과를 두고 학교간 평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언어도단이고 교사와 학교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그러나 지난주 교육과학부 대통령 업무보고에 따르면 진단평가를 정례화해 전국 일제고사를 해마다 최소한 두 번은 치를 예정이라 하니 오는 10월, 해당 학생들의 학업성과가 드러나는 전국학업성취도 시험을 앞두고 각 학교와 학부모, 학생들은 초긴장 상태다. 앞으로는 학교 간, 지역 간, 같은 학교 교사간 학력 비교와 경쟁이 불가피해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얼핏 보면 각 학교마다 학력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처럼 보이나 실질적으로 학습부진아 대책의 형식화, 사교육비 증가, 지역 간 학력 논란, 학력개념 왜곡 등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오므로 재고돼야 한다.

학습부진아 문제는 사교육 변수, 교사 학생간 질적이고 개별적인 학습 부족, 낙제와 유급제도가 없는 현 교육여건에서 미해결과제다. 정부가 학력부진아를 책임진다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이미 실패한 적 있는 수준별 이동수업을 대폭 혁신하거나 교사와 학생간 개별화된 실천, 질적인 교육 등 지속적이고 세심한 대책이 따르지 않는 한 언발에 오줌누기 식으로 형식화될 우려가 있다. 솔직히 학부모들 중에서 교육청이 학력부진 학생을 책임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시험 성적표를 받아든 학부모 입장에서 당장에 내 아이가 반에서, 전국에서 꼴찌라는데 무슨 강심장으로 교육청과 이명박 정부만 믿고 있겠는가? 당장에 학원으로 쫓아가 대책을 세우는 것이 급할 뿐더러 아무리 학원을 다녀본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는 식으로 사교육비가 증가할 것이다. 더구나 서울시 교육청이 11개 학군의 성적을 비교하고 12만명 학생의 백분위 석차까지 학부모들에게 통지한다고 함은 결국 성적 부진아 뒤치다꺼리를 학부모와 교사들 간에 경쟁을 부추겨 해결하려는 뜻이 아니고 무엇인가? 서울시교육청이 학교 간 학력차를 공개함으로써 학부모 학생들에게 학교선택권의 기준을 제공하는 듯이 보이지만 결국 몇몇 학교를 기피학교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외국의 예만 봐도 기피학교로 낙인찍힌 후 그 학교가 되살아난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왜냐면 학생의 학업 부진에는 부모의 경제력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진단평가 문제는 매우 쉬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시험결과 사교육을 많이 받는 영어·수학 과목과 도시·농촌간 격차가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평균은 대략 비슷한데 서울의 경우 11개 학군 특히 강남·북 차이가 심해 영어는 최대 22점 차이, 수학은 18점 차이가 났다고 한다. 개별 학교 간 격차는 이보다 더할 것이다. 초등학교 6년 동안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의 영어, 수학 성적 차이가 가장 심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사교육과 선행학습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요인이 차단되지 않는 한 한국사회의 모든 학력 평가는 학생이 아닌 학부모 평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가혹한 점수경쟁은 시험 위주 학력으로 퇴행할 우려가 크다. 국어과목만 하더라도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등 종합적인 능력이 평가돼야 하나 오지선다형 시험은 독해능력의 일부와 일부 암기지식을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러한 전국 일제고사가 반복될 경우 학교가 시험대비기관으로 전락하고 중학교 수업도 문제풀이 수업으로 전락할 것이다. 시험결과 일부지역에서는 중학교에도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이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교육청의 이런 황당한 난리는 교육감 선거가 주민 직선으로 바뀌자 현 교육감들이 자신의 성과를 내세우기 위해 학생을 볼모로 잡는 것이다. 무책임한 일로써 세계적 교육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다.

지난 5년 동안 학원이 두배로 늘어났다. 이에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는 ‘사교육비 절반, 학교 만족 두배’라는 멋진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교육부문에 자율과 경쟁을 앞세워 시장논리를 적용시키고 교육주체들을 무한경쟁으로 내몰고 있다. 앞으로는 시험성적을 포함한 학교의 모든 정보를 학교 홈페이지에 공개한다고 하니 전국 일제고사의 모든 정보를 손에 쥔 정부가 그 정보를 어떻게 가공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교육현장은 수없이 요동치고 왜곡될 것이다.

김정명신/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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