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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객원논설위원칼럼] 시장의 복수 / 이태수

등록 2008-03-26 19:33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객원논설위원칼럼
시장은 매우 활기차고 발랄하다. 수많은 이들의 욕망이 모여 어울리고 각자의 이익을 좇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곳이므로. 또한 시장은 매우 말랑말랑하다. 끊임없이 값이 오르고 내리고 변화무쌍하기에.

19세기 초 영국에 자본주의 원형이 자리잡은 이후 이 시장으로 인해 자본주의의 성장이 견인되었다는 것을 근본적으로 부정할 이는 없다. 그러나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은 기본적으로 양분돼 왔고 이 시장의 작동원리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찬양과 질타의 대상이 동시에 되어 왔다.

시장이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활동과 결정들을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잣대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시장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이 오로지 가진 자만을 사후에 합리화시켜주는 부정의의 원천이라 비판하기도 한다. 시장에는, 인간의 이기심을 바탕으로 부를 증진시키면서도 인간의 게걸스런 이기심을 통제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신비함이 있다고 보는가 하면, 어떤 이는 반대로 극도의 사적 이익 추구가 공중에겐 해악만을 남기는 것에 주목하여 오히려 ‘보이지 않는 발’이 존재한다고 힐난하기도 한다.

결국 자본주의의 발전사를 곰곰이 되돌아보면, 시장은 오늘날까지의 발전과 부를 이끌어온 주역이지만, 동시에 오늘날의 각종 비인간성과 불평등의 원천으로 지목해도 될 것이다. 그렇기에 시장은 최소한 순치되어야 하는 맹수라고 여겨야지, 방목하다 보면 알아서 길들여질 야생마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현실의 시장에는 반드시 고삐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시장의 장점으로 거론되는 ‘경쟁을 통한 효율성의 증대’라는 덕목도 따지고 보면 완벽한 정보, 균질의 상품, 수많은 공급자와 수요자, 자유로운 진입 탈퇴, 보장된 구매력 … 등 비현실적인 가정 아래서 원리적으로만 가능한 것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비현실적 가정이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현실세계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할 부작용에 대한 견제와 감시장치는 당연하다 하겠다.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바야흐로 ‘시장에 의한, 시장을 위한, 시장의’ 시대가 오고 있다. 금산분리 원칙 등 시장을 제약하는 모든 규제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듯한 접근에서 경제원론의 에이비시(ABC)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장이 침투해서는 안 되는 영역, 상품화를 통해 이윤추구의 대상이 되지 않아야 하는 영역에 대한 구분마저 실종되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리처드 티트무스라는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복지학자가 혈액의 경우 시장의 거래를 통하기보다도 자발성과 의무에 기초한 헌혈의 방식이 훨씬 우월하다는 ‘선물의 경제’를 주장한 지 오래다.

보육·장기요양서비스 등 각종 복지서비스의 시장화, 의료서비스의 영리화, 나아가 사회보험의 민간시장보험으로의 대체는 노무현 정부에서 시작됐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제동장치 없이 더욱 가속화할 것 같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의무와 도덕, 타인을 위한 서비스 등에 의해 유지되어야 할 것들이 분명히 있다. ‘공공의 영역’ ‘공공성’으로 대변되는 이 영역이 ‘시장’과 ‘효율’의 논리로 전일화되고 축소되는 것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도 없는 자들이 두렵다.


인도 출신의 정치경제학자 메그나드 데자이는 <마르크스의 복수>라는 책을 통해, 자본주의의 시장과 경쟁의 역동성을 인정한 마르크스와는 달리 마르크스 후예들은 이를 경시했고 오늘날 마르크스에 의해 복수당하고 있다고 조소적으로 말한다. 지금과 같이 시장으로의 천박한 ‘올인’이 머지않아 ‘시장의 복수’를 불러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은 꽃샘추위에 겁먹은 필부의 공연한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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