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이 개념이 저 개념보다 참이라면 누군가에게 실질적으로 무슨 차이를 만드는가? 아무리 추적해 봐도 실질적 차이가 없다면 실제로 같은 것이고 모든 논쟁은 쓸데없다. … 행위는 사유의 유일한 의미다.” 실용주의 대가인 미국 윌리엄 제임스(1842~1910)의 말이다. 무엇이 옳은지를 알려면 선택 결과 세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따져보면 된다는 얘기다. 실용주의의 저력은 이런 실사구시 태도에서 나온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철학으로 실용주의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실용주의 대북정책’ 또는 ‘대북 실용주의’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대북정책에서도 결과를 중시하겠다는 의지 표명이다. 하지만 취임 한 달이 넘은 지금 상황을 보면 실사구시보다는 ‘없는 것’들이 더 두드러진다.
첫째, 현실적 목표가 없다. 실용주의가 성립하려면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데, 정부 정책은 그렇지 않다. 북한의 비핵화와 개방이 이뤄지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비핵·개방 3000’은 적절한 중간 목표가 설정되지 않는 한 공허한 구호에 그친다. 비핵·개방과 동시에 이뤄질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북-미 및 북-일 관계 정상화 등에 대한 정책도 이후 과제로 미뤄진다. 다른 나라들이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할 틀을 짤 때까지 구경이나 하겠다는 건가.
둘째, 방법론이 없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남북 관계에서 상호주의를 적용하겠다고 한다. 상호주의의 주요 내용은 납북자·국군포로를 비롯한 인권 문제 진전과 경제적 실리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당장 성과를 내기가 어렵다. 주고받기 식보다는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는 남북 관계의 토대가 돼야 할 10·4 정상선언 이행에 유보적이다. 아무 것도 풀리지 않고 시간만 가거나 여러 문제가 뒤엉킬 가능성이 큰 구도다.
셋째, 국가적 정체성이 없다. 정부는 북한과 관련된 모든 주요 사안을 미국에 기댄다. 핵문제에서는 북-미 협상을 지켜보는 방관자 위치로 물러섰고, 남북 사이 특수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통일정책에서도 미국을 먼저 쳐다본다. 다음 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한반도 문제들에 관한 틀을 잡아주면 그에 맞춰 움직이겠다는 태도다.
이런 3무 정책은 우선 두 가지 결과를 낳고 있다. 먼저 6자 회담이 동력을 잃고 있다. 북-미 갈등을 적극 중재할 나라가 없는데다 남북 대화가 끊겨 한국의 발언권이 줄어든 것이 주된 변수다. 최근 북한핵 2단계 합의 시한을 5월, 핵 폐기 합의를 8월로 늦춰 잡는 일정이 한국과 미국에서 거론되는 것은 6자 회담이 장기 교착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대북 강경노선이 고개를 들면서 북한의 반발도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 내 강경파들은 한국의 정권 교체를 계기로 한-미-일 대북 압박 공조를 노골적으로 부추긴다. 이들에 직접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한-미 동맹에 집착하는 정부 태도는 이들의 주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북한의 개성 남북경협사무소 남쪽 인력 철수 요구는 이에 맞서기 위한 반발이라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는 문제의식조차 미흡하다. 이 대통령과 정부는 전향적 대북정책을 내놓기보다 이전 정권이 이룬 성과를 부정하는 데 더 힘을 쏟는다. 국민 지지도가 70%를 넘은 10·4 정상선언까지 ‘국민 합의가 부족했다’는 이유로 무시한다. 정부는 지금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도, 무엇을 해야 할지도 잘 모르는 듯하다. 이대로 가면 북한 핵문제도, 남북 관계도 더 나빠질 수밖에 없다. 대북 실용주의는 본격적인 출발을 하기도 전에 파산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지석 논설위원 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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