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석 논설위원
아침햇발
식량가격은 왜 오를까?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 따르면 인도인 탓이다. 그는 지난주 한 행사에서, 미국 전체 인구보다 많은 인도 중산층 3억5천만명이 영양 풍부한 음식을 찾음으로써 식량가격이 오른다고 주장했다. 인도 정부가 발끈했음은 물론이다. 통상담당 국무장관은 ‘그는 유가 급등 원인도 인도와 중국의 수요 증가에서 찾았다’고 비난했다. 미국 농무부 자료를 보더라도 미국의 1인당 한해 곡물 소비량은 1046㎏인 데 비해 인도는 178㎏에 불과하다.
부시 대통령의 태도는 이명박 정권과 닮았다. 청와대와 정부는 미국 쇠고기 전면 수입개방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근거 없는 선동’과 ‘인터넷 여론의 편향성’ 탓으로 돌린다. 부시가 엉뚱한 데서 희생양을 찾듯이, 자신의 책임은 다하지 않고 ‘아둔한 국민’을 질책하는 오만한 모습이다.
이 대통령이 내세운 실용주의는 신자유주의의 다른 이름이다. 대기업을 염두에 둔 온갖 배려와 규제완화, 교육·복지 시장화, 공기업 민영화, 수도권 중심주의 등은 약육강식의 시장질서를 기본으로 한다. 통상정책 또한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것의 한가운데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자리한다. 이런 사고구조에서 쇠고기 검역주권 문제는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먹으면 된다’는 소비자 선택 논리에 쉽게 자리를 내준다.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이 신자유주의에 걸맞은 ‘강부자’로 채워진 건 우연이 아니다.
국민들은 ‘이명박표 실용주의’의 실체를 알아가고 있다. 쇠고기 협상에 대한 분노에는 그간 나온 여러 정책에 대한 불만이 집약돼 있다. 곧, 쇠고기 문제는 이명박 정부의 앞날을 가늠하는 시금석 구실을 하고 있다. 잠정 결론은 이명박 정부가 정체성 확립에서부터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세력은 크게 셋으로 나뉜다. 안보 보수파, 경제적 자유주의자, 사회적 보수파가 그것이다. 지금 시기에 경제적 자유주의자는 신자유주의자와 동의어다. 많은 나라에서 이들 세 그룹은 상황에 따라 연대와 대립을 되풀이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수십년간 보수세력이 분화되지 않은 채 안보 보수파가 주도권을 장악해 왔다. 그러다가 지난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이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보수세력의 중심에 진입했다. 안보 보수파 일부는 자유선진당으로 떨어져나갔고 다른 일부는 한나라당 내 소수파에 머문다.
당연한 얘기지만,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신자유주의자는 설 자리가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이들은 결국 낡은 안보 보수파와 손잡을 가능성이 크다. 색깔론은 여전히 보수세력을 결집시키는 주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을 분야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관련 현안들이다. 그러잖아도 남북관계는 이미 1990년대 중반 이후 최악이다.
이명박 정부에 1기 부시 행정부는 타산지석이 된다. 집권 초기 부시는 이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비판하긴 했으나 강경 일변도는 아니었다. 경제·사회 정책에서도 온건우파 노선을 고수했다. 하지만 그는 취임 한해가 지나기 전에 과격한 안보 보수파로 변신했다. 그는 지금 미국 역사상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다.
보수세력은 아직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허구의 이데올로기를 병풍으로 삼는다. 쇠고기 사태는 그 약발이 다했음을 보여준다. 국민은 이제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 자체를 문제 삼는다. 새 정부 출범 석 달도 되기 전에 국민은 뿔났다. 위기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말 심각한 위기가 온다.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김지석 논설위원j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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