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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삶과경제] 광우병 괴담? 노동절 괴담? / 강수돌

등록 2008-05-14 20:06수정 2008-07-18 16:50

강수돌  고려대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강수돌 고려대 교수, 조치원 마을 이장
삶과경제
‘실용의 정부’ 초기, 오렌지를 ‘아륀지’라고 발음하지 않으면 마치 과일도 못 먹을 것처럼 하더니, 이번엔 우리 생명을 담보로 한 중대한 국제 협상에서 번역을 잘못해 오류를 범했다 한다. 광우병 논란이 많은 쇠고기 협상에서 ‘…가 아니라면’(unless)을 ‘…라 하더라도’(even if)로 오역했다는 것. 그렇게도 영어 몰입 교육에 강박증을 보인 게 심리학에 나오듯 ‘열등감이 집착을 낳은’ 탓일까. 그러곤 한편에선 단순한 실수라 얼버무리려 했고 다른 편에선 이미 모두 알고 있었다 한다. ‘영어도 못하는 주제에 영어 교육을 강요하냐?’는 비난이 두려웠나?

그사이 ‘광우병 괴담’이 청소년들 사이에 널리 퍼졌다. 정부는 비과학적 괴담이라 하지만, 청소년들은 과학적 현실이라 한다. 그리고 광장으로 나가 외친다. “투표권도 없는 우리가 왜 이 나이에 목숨 걱정을 해야 하나?”라고. 또 “광우병 쇠고기가 수입되면 학교 급식에 많이 들어갈 것”이라고. “내가 광우병 걸려 병원 가면 건강보험 민영화로 치료도 못 받고 죽을 텐데 화장을 해 대운하에 뿌려다오”라며 종합선물세트 같은 해학도 즐긴다. 교육청에선 청소년 안전 운운하며 문화제 참여를 저지하거나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재촉한다. 아이들은 “야간 자율학습도 밤 12시에 끝나는데, 언제부터 안전 걱정 했냐?”고 받아친다. 청소년을 ‘미숙아’로 파악하는 기성세대를 향한 통쾌한 한 방이다. 실제로 청소년은 미숙아가 아니라 ‘날마다 어른이 되어 가는 사람’이다. 그들 말을 괴담이라 회피하지 말고 경청하라.

광우병에 대한 두려움, 바로 이것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하지 말자. 있는 그대로 껴안자. 실컷 두려움에 떨어보자. 그리고 그 두려움과 느낌을 있는 그대로 말해보자. 제발 배운 자들과 가진 자들, 힘 있는 자들이여, 내면의 두려움을 숨기지 말라. ‘어깨 힘부터 빼고’ 말하자. 그래서 어떻게 이 두려움을 생산적으로 이길 수 있을지 토론하자. 제발 다른 이의 말을 잘 들어보자. 당장 먹고사는 데 필요한 최소의 일만 하고, 더 많이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 광우병 쇠고기 문제는 단순한 무역 문제가 아니라 삶과 죽음의 문제다.

그런 면에서 나라 살림살이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자. 수출 많이 해서 달러 많이 벌고 값싼 쇠고기 많이 먹으면 국민이 행복할 거라는 논리 자체를 되짚자. 광우병 위험만 잘 차단된다고, 대운하만 안 한다고 다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부터 다 분노하는 이유는 ‘삶의 비전’이 안 보여서다. 경제를 살려 사람답게 살도록 해 달라고 뽑은 정권이 희망은커녕 절망만 줄 때 분노는 폭발한다. 이미 대통령 지지율이 절반 이상 떨어졌다 한다. 불과 석 달 만에 이렇게 많은 학생들을 광장으로 나오게 한 정권은 없다. 정말 새 정권의 역사적 사명은 ‘잃어버린 10년’간 조용했던 학생운동의 부활인가?

같은 맥락에서 ‘노동절 괴담’도 잊지 말자. 새 노동부 장관은 메이데이 직전 외국 투자자들을 만나 “근로기준법이 근로자를 과보호하고 있다”며 “임금협상 주기를 2년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광우병 소를 두려워 말라는 말이 진짜 괴담이듯 이건 노동자에게 또다른 ‘괴담’이다. 돈벌이를 위해 인간적 삶을 계속 희생시키라니. 점수보다 건강이, 돈보다 삶이 먼저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괴담인지 헷갈리는 사회, 과연 희망은 있는가. 새싹들이 쫑긋쫑긋 치솟는 작은 텃밭에서 ‘어깨 힘 빼고’ 호미질하며 땅과 나눈 대화다. 행여 살아 있는 흙 속에 삶의 희망이 있지 않을까?

강수돌 고려대 교수·조치원 마을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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