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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론] 5·18정신 못 잇는 현실 민주주의 / 조정관

등록 2008-05-15 21:20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28년 전 5·18 민중항쟁은 우리 역사의 전환점이었다. 오랫동안 우리 사회를 억압해 온 박정희 독재가 무너지고 열린 1980년의 ‘서울의 봄’, 그 불확실한 공간에서 신군부의 쿠데타에 맞서서 생명을 버리며 민주화를 요구한 국민저항이 바로 5·18이다. 우리는 5·18을 통하여 은폐되었던 한국사회의 모순을 본격적으로 인식할 수 있었고, 그 극복방향도 잡아나가게 되었다.

소수 정치군인들이 항의하는 국민들의 생명과 인권을 ‘국민의 군대’를 동원하여 짓밟아간 그해 5월의 광주 거리에서 우리는 민주주의가 정말 왜 필요한지를 생생하게 배울 수 있었다. 계급·계층·성별·나이를 초월하며 반인륜적인 정권의 탄압에 죽음을 불사하며 항거하는 ‘절대공동체’를 형성했던 광주 민중은 민주화 운동을 위한 엄청난 용기와 민중 중심의 사고, 그리고 연대를 가르쳐주었다.

이전에 우리가 민주화의 응원자요 친구라고 보았던 미국이 5·18에서 행한 역할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미국을 극복하려는 민족자주 관점의 확산을 낳았다. 또 터져 나온 5·18 항쟁예술을 계기로 학술·문화 전영역에서 독재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반권위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탈근대적 도전이 거대하게 형성되었다. 이러한 민주·민중·민족의 정신을 바탕으로, 그리고 ‘광주사태’라는 당국의 진담(?)에 대항하여 온갖 진실을 담은 괴담(?)을 퍼뜨리는 담론전쟁을 통하여 5·18은 단 7년 만에 6월 민주항쟁으로 다시 살아나 이 땅의 정치 민주화를 성공시켰던 것이다.

그뿐인가? 5·18은 국회청문회 과정과 끝내는 두 전직 대통령을 반란 및 살인죄로 감옥에 집어넣는 ‘세기의 재판’ 과정을 통하여 이 땅에 다시는 군부독재가 존재할 수 없도록 만들어낸 결정적 재료였다. 그래서 5·18은 눈부신 압축적 민주화를 일구어낸 한국인 모두의 자랑스러운 역사였고 교훈이었다.

그러나 막상 나라일꾼을 직접 뽑는 정치 민주주의를 운영하면서부터 5·18의 의미는 변질되기 시작했다. 지역주의 선거 경쟁에서 5·18은 특정 정치세력의 지역 독점을 위한 편리한 상징의 하나로 자리매김됐고, 반대 정파로부터는 암묵적인 부정의 대상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진상규명을 위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가해자들의 입막음 전술과 정치적 해석을 통한 물타기로 5·18을 왜곡하려는 일들이 여전히 진행 중이다. 경남 합천에서의 ‘일해공원 논란’은 하나의 실례다. 5·18은 우리 모두의 역사가 아니고 단지 ‘광주’의, 혹은 단지 그 ‘부상자’나 ‘유공자’들의 사건에 불과해야 한다는 시각은 우리 사회 한쪽에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동안 5·18에 대한 ‘명예회복’도 추진되고 ‘기념사업’과 ‘피해자 보상’도 진행되어 왔지만 그 성과는 여전히 불충분할 뿐이고, 5·18공동체의 자존심은 충분히 회복되지 않고 있다. 1980년 5월21일의 도청 앞 일제사격 같은 사건에 대한 가해책임이 아직 제대로 규명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5·18 시민군의 완전한 명예회복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 국가보조가 시작된 후 광주 일반시민의 5·18 기념행사 등에 대한 공감대와 참여도는 더 줄어들고 있다. 개별적 피해자 보상은 사례에 따라 광주 공동체의 비판과 냉소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5·18 피해자 및 유공자와 시민 일반을 정서적으로 가르는 원인으로 작용해 왔다. 다른 무엇보다도 5·18 정신을 앞장서 실천해야 할 광주에서 지역주의를 넘어서는 건강한 민주주의도, 민중참여의 활발한 시민사회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사실 이 고민은 광주만이 아니라 ‘민주화된’ 우리 사회 전체에서 모두 되새겨 봐야 할 문제 아닌가?

조정관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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