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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프리즘] 이름을 부르는 것에 대하여 / 강태호

등록 2008-05-22 19:44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한겨레프리즘
5월 초 백두산을 다녀왔다. 처음이다. 현지 여행 안내인들의 말로, 백 번 가서 두 번 본대서 백두산이라고 한단다. 하루에도 ‘백두’번 변한다는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천지 보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처음 가서 두 번 천지를 봤다. 복 받은 셈이다. 안내인은 평소 덕을 쌓았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치켜세웠다. 천지를 못 본 사람도 ‘천지’고 본 사람도 ‘천지’라서 천지라고 한다는 말도 들었다. 천지 봤다고 내세울 건 없는 셈인데, 그래도 처음 봤으니 오죽 할말이 많겠는가. 한마디 하자면 북파 코스 가운데 걸어서 달문 쪽으로 올라 천지 물가에 가면 뜨끈뜨끈한 신라면을 먹을 수 있다. 천지 물로 끓인 것이다. 지난 1월엔 2000원이었다고 들었는데 3000원으로 올랐다. 천지에서 아래 세상의 변화를 실감했다. 또 아는 이들은 아는 얘기겠지만 백두산에선 달러는 안 받아도 원화는 환영이다. 돈 안 바꿔도 된다.

2006년 통계인데 <길림신문> 집계로 2006년 백두산을 찾은 사람은 70만명이었다. 그 전해보다 20만명이나 늘었다. 여행업계는 이 가운데 중국인을 뺀 외국 관광객을 15∼20%로 추산한다. 이 가운데 십중팔구는 한국인으로, 얼추 10만∼12만명으로 본다. 한국인 관광은 여름 성수기인 두 달에 집중되고 북파 코스 등 오르는 곳이 한정돼 있다. 그러니 6월 말∼8월 말 현지엔 창바이산(장백산)이라는 말이 귀에 설어도 한국인 천지다. 그야말로 백두산에 왔구나다. 그러나 멋들어지게 휘갈겨 쓴 ‘長白山’이란 대형 선간판 표지판들을 자주 마주치다 보면 주눅이 든다. 중국이 뭔가 작정을 했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여긴 백두산이 아니라 장백산이라고 말하려는 걸까? 일본이 독도를 다케시마(죽도)라 하는 것과는 다르지만 창바이산을 백두산의 다른 이름으로 볼 수 있을까?

두 달 전 쯤 방사선 진단의학 분야의 명의라 할 만한 의사분으로부터 이름 명(名)자의 조어 뜻풀이를 들었다. 명이라는 글자는 저녁 석(夕)에 입 구(口) 자가 합쳐진 것이다. 왜 그러냐면 저녁이 돼 어두워지면 서로 얼굴을 분간하지 못하니 입으로 말해 자기가 누군지를 알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게 이름이라는 것이다. 이름이란 자기가 누구인지를 말로 알리는 것이다. 그럼 스스로를 알리지 못하는 것들은 어떤가? 누군가가 그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김춘수 시인은 꽃에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사물은 언어 이전에 존재하고 독립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명칭은 그 사물을 지배한다. 영토주권을 둘러싼 국제 분쟁에서 이름을 부르는 지명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는 이유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에베레스트산의 원래 명칭은 초모랑마였다. 티베트어로 그 말뜻은 세 번째 여신(대지의 신들인 네 봉우리 가운데 세 번째)이다. 반면에 에베레스트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1858년 인도의 측량국장이었던 영국인 조지 에베레스트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 세계는 측량국장의 이름인 에베레스트는 알아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초모랑마는 모른다.

창바이산은 곧 관광객 100만명 시대를 맞는다. 백두산의 중국화와 창바이산의 세계화다. 지난 2003년 북이 부분적으로 문을 열어 백두산을 다녀온 이들은 겨우 1천명을 조금 넘는다. 남북이 서로 열어 그 이름을 불러 주지 않는다면 백두는 티베트어처럼 토착 현지어로만 기억될지 모른다.

강태호 남북관계 전문기자 kankan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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