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중국정치
시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미 양국은 21세기 한-미 전략동맹을 구축했고 일본과도 미래지향적 동반자 관계의 기반을 조성했으며 이어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으면서 실용외교의 대강을 구성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외교의 선순환 구조를 세웠으나, 현실적으로는 서로의 행동을 제약하면서 삐거덕거리고 있다. 무엇보다 가치동맹, 신뢰동맹, 평화구축 동맹이라는 한-미 관계의 이면에는 불행하게도 미국과 관련한 어려운 결정을 쉽게 해 줄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중국과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고 이것이 동맹 직전의 최고의 양자관계라고 애써 강조했으나, 중국으로부터 한-미 군사동맹이 냉전의 유산이라는 따가운 충고를 듣고 대화채널을 마련한 것 이외에 실질적인 내용을 담지 못했다. 이것은 (미국의) 일방주의 반대, 전역미사일 방어체제 반대, 인권문제의 정치화 반대를 명시한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관계에 비하면 뚜렷한 온도 차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심지어 “한국의 대북한 평화번영 정책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기존의 한-중 관계보다 후퇴한 측면도 있다.
이러한 모순적인 상황은 아마도 복잡한 관계망을 구성하고 있는 동북아 질서를 한-미 동맹의 외눈을 통해 접근했거나 전임 정권의 자산과 부채를 함께 안지 못한 포용력의 부족에서 비롯된 역편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야말로 ‘전략적 유연성’을 잃은 것이다. 더구나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외관계를 보는 변화된 국민의식은 정권이 독점하거나 일방적으로 계몽할 수 있는 것을 벗어나 있다.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에 대한 자존심을 버린 정부를 겨냥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과 미국적 가치에 충실한 외교참모들의 포진은 그 자체가 한-미 관계를 ‘복원’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전임 정부보다 훨씬 유연한 외교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환경을 확보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미국으로부터 그 동안 ‘우려와 불신감’을 확인받는 데 주력했고 한-중 관계에 대한 속도조절을 시도했으며, 북한문제의 특수성을 국제문제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리면서 운신의 폭을 스스로 제약해 버렸다.
이런 점에서 동맹의 편익이라는 두터운 갑옷부터 벗고 몸을 민첩하게 만들면서 한국외교의 중심성을 세우는 일이 시급한 과제가 되었다. 이를 위해 우선 ‘비핵·개방·3000’ 정책을 과감하게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이미 값비싼 캠프 데이비드의 숙박료를 치르고 미국으로부터 ‘비핵·개방·3000’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이끌어 내었으나 정작 대북정책에서는 ‘한국 배제’를 초래했다. 심지어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의제에도 포함되지 못했으며, 중국으로부터 “이해를 표시한다”는 어색한 답변을 들어야 했다. 더구나 체질적 반발을 보이는 북한의 태도에 비추어보면 현실의 대북정책의 근간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것을 방증해 주고 있다. 현실에서 수용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것이 바로 실용의 자세다.
이것은 사실 이명박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을 봤을 때, 한-미 동맹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새로운 동북아 균형외교론의 내용을 채우는 새로운 첫 단추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7월에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과 하반기에 열릴 한-중 정상회담은 우리 외교의 방향을 새롭게 정립하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권출범 백일을 맞는 국정쇄신에 외교정책의 쇄신을 포함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중국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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