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현호 논설위원
아침햇발
촛불집회의 어느 날, 무대 위 사회자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국회의원 한 분이 자유발언을 신청했습니다, 어떡할까요? 들어 보자는 분들은 박수를 쳐주세요. 박수가 조금 있었다. 이번엔 듣지 말자는 분들이 박수를 쳐주세요. 조금 더 많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은 가만히 침묵했다. 사회자는, 그럼 듣지 않겠습니다라며 다음 사람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요즘 정당의 처지가 이렇다. 시민들의 직접 행동이 만개한 광장에서 대의정치의 주역인 정당이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개인 자격으로 집회와 행진에 끼지만 “뭐 하다 이제 나온 겨?” “이제 와서 편승하려는 거 아닙니까?”라는 ‘꾸지람’만 듣는다. 3선의 민주당 의원이 지난 주말 겪은 일이다. 여당인 한나라당은 광장에서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촛불집회는 권력과 시민의 직접 대치다. 그 사이엔 완충장치도, 매개도 없다. 이건 교과서와도 다르고, 우리의 경험과도 다르다. 교과서의 대의제 국가라면 정당 조직과 언론 등을 통해 공동체의 문제를 발굴하고 이를 공론에 부쳐, 의회에서 정책과 법안으로 해결책을 만들어내는 게 정상이겠다. 그게 아니라도 시민단체나 학생집단 등 조직화된 세력이 대중의 요구를 구체화하고 행동을 이끈 게 ‘살아 있는 정치학 교재’ 대한민국의 그리 멀지 않은 역사였다. 하지만 이번엔 정당은 물론, ‘운동권’도 주역에서 밀려나 주변을 맴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특정 정치세력을 지도자로 인정하지도 않거니와, 장차 그들 중 누군가를 수혜자로 삼을 생각도 딱히 없는 것 같다. 설사 그 때문에 선거에서 이겼다 해도 반사적 이익일 뿐이다. 시민들은 인터넷 공간 등에서 온갖 정보를 걸러 집단적 판단을 일궈내고, 곧바로 온·오프를 가리지 않는 직접 행동에 나선다. 속도와 변화무쌍함이 거세게 흐르는 물과 같다. 불과 몇 달 전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시킨 바로 그 사람들이 이제 그를 욕하는 손팻말을 들고 나섰다. ‘웹 2.0 시대’의 대중이 그렇게 종잡을 수 없다면, 이는 정치에 대한 그들의 불신이나 무소신 때문이라기보다 여론 형성과 변화의 속도가 빨라진 탓이라고 보는 게 온당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일찍이 겪지 못한 직접 민주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소통의 조건부터 달라졌다. 애초 도시는 광장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만큼이었다고 한다. 민회가 열렸던 고대 그리스 도시의 언덕 광장에선 육성 연설이 생생하게 들렸다. 지금 인터넷 도시에선 외치거나 속삭이는 소리가 무한대로 퍼진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실시간으로 직접 소통한다. 정보와 의견의 이동에 시간적·공간적 제한이 없다. 그만큼 정치적 주장이 빠르고 폭발적으로 형성된다.
이쯤 되면 우리 정치체제가 이런 변화된 조건에서 국민의 뜻을 제때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먼저, 국민의 자발적인 참여가 쉽게 이뤄질 수 있도록, 그리고 효과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정당이 제대로 한번 바뀌어야 할 것이다. 또 있다. 따지자면, 4년이나 5년에 단 한 차례의 투표만으로 권력의 행사 일체를 위임받았다고 보는 것은, 지금처럼 여론이 현안에 즉각 대응하는 인터넷 시대에는 어색하다. 선출된 권력이 얼마 안 가 국민과 갈등을 겪곤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를 피하자면 정치체제의 변화 즉응성을 높여야 한다. 국민소환이나 중간평가 제도 도입 등과 함께, 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지금도 적절한 제도인지 다시 살펴야 할 이유다.
여현호 논설위원yeop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